항목 ID | GC0330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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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昊 |
영어음역 | Won Ho |
이칭/별칭 | 자허(子虛),무항(霧巷),관란(觀瀾),정간(貞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양식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자허(子虛), 호는 무항(霧巷)·관란(觀瀾), 시호는 정간(貞簡). 시중 원홍필(元弘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별장(別將) 원헌(元憲)이다.
[활동 사항]
원호(元昊)는 1423년(세종 5)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문종 때에는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게 되자, 사직하고 고향 원주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영월 서쪽에 관란정(觀瀾亭)을 짓고 영월 쪽을 바라보며 왕을 그리워했다. 현재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 산 위에 제천 원호유허비 및 관란정이 있다. 단종이 승하하자 삼년상을 입었고, 삼년상을 마친 뒤 고향인 원주에서 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세조가 특별히 호조 참의에 제수하여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원호는 단종의 장릉(莊陵)이 자기 집의 동쪽에 있어, 앉을 때는 반드시 동쪽을 향하여 앉고 누울 때는 반드시 동쪽으로 머리를 두며 평생 단종을 그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관인 손자 원숙강(元叔康)이 직필의 화를 입자 자신의 저술과 소장(疏章)을 모두 태워버리고는, 후손들에게 다시는 글을 읽어 세상의 명리(名利)를 구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관란유고(觀瀾遺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1699년(숙종 25) 판부사(判府事) 최석정(崔錫鼎)이 건의하여 고향에 정려가 세워지고, 1703년 원천석(元天錫)의 사당에 배향되었다. 1782년(정조 6) 김시습(金時習)·남효온(南孝溫)·성담수(成聃壽)와 함께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원주의 칠봉서원(七峯書院),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 영천의 용계서원(龍溪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