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922 |
---|---|
한자 | 姜宰武 |
영어음역 | Gang Jaemu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제규 |
[정의]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으로 아들 강정환(姜鼎煥) 역시 효행으로 알려졌다. 다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가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함께 기록된 강재망(姜宰望)은 형제로 짐작된다.
[활동 사항]
강재무(姜宰武)와 관련한 기록은 『여지도서』에 “부친이 병으로 위급하니 다시 그 손가락을 잘라 입에 피를 흘려 넣어 살렸다. 숙종 기해에 공조 좌랑에 증직되었다”라고 전한다. 『여지도서』의 내용으로 보아 강재무는 이전에도 효행이 뛰어났던 인물로 부친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또다시 단지(斷指) 효행을 실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숙종 45년 11월 10일[무인]에 효행과 절의가 뛰어난 사람들을 정포(旌褒)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보면 당시 10여 명이 효행과 정절(貞節)로 정려(旌閭)되었고, 6명이 면역(免役)되었으며, 25명이 효행과 충의(忠義)로 증직(贈職)되었고, 41명이 효행과 정절로 복호(復戶)되었으며, 37명이 효행과 정절로 물건을 차등 있게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강재무는 당시 25명의 증직자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지도서』에는 강재무의 아들인 강정환의 효행과 함께 형제로 추정되는 강재망에 대한 사실도 기록되어 있어 제천 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에까지 효행이 널리 알려졌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상훈과 추모]
1719년(숙종 45) 효행을 높게 평가받아 공조 좌랑(工曹佐郞)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