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8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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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商谷集 |
영어음역 | Sanggokjip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간행 시기/일시 | 17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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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979년 |
성격 | 문집 |
저자 | 강유 |
간행자 | 강필건|강필기|강성열 |
권책 | 3권 1책[목판본]|2권 1책[필사본] |
규격 | 13.5×21.6㎝[목판본]|19.0×27.5㎝[필사본]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문인인 강유의 문집.
[저자]
강유(姜瑜)[1597~1668]의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공헌(公獻), 호는 상곡(商谷)이다. 충청북도 제천 두학 출신이다. 강천민(姜天民)의 아들이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제천의 남당서원에 배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상곡집(商谷集)』은 목판본과 필사본 두 가지가 있다. 목판본은 6세손 강필건(姜弼健)·강필기(姜弼耆) 등이 편집하였으며, 1798년(정조 22)에 간행하였다. 필사본은 1979년 제천에서 간행되었다. 필사 중간본 『상곡집』은 1979년 후손인 강성열(姜聲烈) 등이 중심이 되어 초간본 『상곡집』에 그 외 각 집안에 흩어져 있는 강유의 유문을 수집하고 연보를 첨부해 간행한 것이다. 1979년 중간 때 필경한 이는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살았던 이초용(李迢鎔)이다.
[형태/서지]
『상곡집』 목판본은 3권 1책으로, 크기는 13.5×21.6㎝이다. 필사본은 2권 1책으로 크기는 19.0×27.5㎝이다.
[구성/내용]
목판본의 내용은 서, 권1 시(詩), 권2 문(文), 권3 부록(附錄), 발로 구성되어 있다. 1798년에 쓴 민종현(閔鍾顯)의 서문과 성대중(成大中)의 발문이 있다. 권2에는 1627년 정묘호란 때 올린 「척화소(斥和疏)」와 그 다음해에 올린 「청물쇄환주회인소(請勿刷還走回人疏)」, 그 외 중앙과 지방관으로 재직 시 올린 각종 사직문, 당시 만연하였던 사치 풍조에 대한 개선을 주장한 「호조참의시응지진시폐소(戶曺參議時應旨陳時弊䟽)」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3의 부록에는 황해도관찰사로 있을 때의 교유서(敎諭書), 유제문(諭祭文), 홍주원(洪柱元)이 지은 제문, 「호막별첩(湖幕別帖)」, 민우수(閔遇洙)가 편찬한 묘갈명, 김진상(金鎭商)이 쓴 「제상곡강공소책신첩후(題商谷姜公疏冊贐帖後)」 등이 있다. 이 중 「호막별첩」은 1629년 전라도사로 좌천되자 이를 섭섭히 여겼던 친우들이 지은 송별시 모음이다. 시를 지어 준 사람은 이명한(李明漢), 이소한(李昭漢), 임광(任絖), 김광현(金光炫), 박일성(朴日省), 김광혁(金光爀), 정태화(鄭太和), 김광욱(金光煜), 김광찬(金光燦), 박동량(朴東亮), 장유(張維), 김남중(金南重), 김덕승(金德承) 등이다.
필사본은 중간서, 서, 권1 시(詩), 권2 문(文), 권3 부록(附錄), 발, 국문해석(國文解釋), 습유(拾遺), 추배실록(追配實錄), 별록(別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서는 1979년 김용숙(金容肅)이 적었으며, 중간 발문은 신승만(辛承萬)이 적었다. 『상곡집』 필사본의 별록에는 시조 강이식(姜以式) 이하 진주 강씨의 세계를 적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 문인이었던 강유의 학문과 사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인조반정 이후 중앙에서의 오랜 관료 생활로 지역과 관련된 기사는 상대적으로 적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화친을 배척하면서 올린 「척화소」와 그 다음 해에 올린 포로로 있다가 도망쳐온 사람들을 도로 보내지 말기를 청하는 「청물쇄환주회인소」 등에서는 강경한 대청(對淸) 자세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