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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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屹 |
영어음역 | Gwak Heu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동전 |
[정의]
조선 중기 때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활동사항]
1559년(명종 14)에 경원부사를 지냈는데, 재임 중 청렴하다고 하여 명종으로부터 옷 한 벌을 받았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재임 중인 1565년(명종 20) 12월에 변협(邊協)[1528~1590]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으며, 1568년(선조 1) 6월에 대호군에 임명되어 떠나자 백성들이 명관이라고 칭하였다.
변협이 제주목사에 부임하기 10년 전인 1555년(명종 10)에 을묘왜변이 일어났을 때 왜구들이 화북포로 상륙하여 제주성을 공략하고 고능을 점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10년 동안 방호가 미비한 상태였으나, 1565년 12월에 곽흘이 부임하여 군정을 정비하고 성곽과 무기를 보수하면서 국방에 대비하였다. 또 가락천이 제주성 밖에 있어서 만일 제주성이 포위되면 음료수 공급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 제주성을 동쪽으로 뒤로 물려 쌓아 성의 둘레가 약 2.3㎞, 높이가 약 3.5m으로 성안을 넓히고 성 주변을 단단하게 하였다.
1568년(선조 1) 봄에는 고능 쪽에 운주당(運籌堂)을 건립하고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제액을 게시하였다. 그리고 구성(舊城)의 성가퀴(성 위에 낮게 쌓은 담)와 격대(擊臺)를 보수하여 외환에 대한 대책을 철저히 하고 전 목사였던 변협처럼 과감한 억불숭유정책을 펼쳐 제주도의 사찰을 훼철하고 불상을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