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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839
한자 放送
영어음역 Bangsong
영어의미역 Broadcast|Broadcasting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문교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전파에 의해 이루어지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

[개설]

방송은 정보와 오락을 수집·가공하여 일반 대중이 수신하도록 무선 전파를 이용하여 보내는 일 및 그 제도와 방법을 말한다. 정보에는 시사·논평·교육·광고 등이 포함되고, 오락에는 음악·연예·드라마·스포츠 등이 모두 포함된다.

방송은 단순한 전파의 발사가 아니라 전파의 물리적 특성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가치관이나 사상·감정, 기타 제반 사회 현상을 음성·음향·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전파의 질, 물리적 특성, 방송국의 허가·운영 및 감독이 「전파관리법」의 대상이 되며, 그 사회성과 문화성을 위해 전파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방송법」의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 「방송법」제2조에서의 방송에 대한 정의는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고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 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여기서 공중이라 함은 개별 계약에 의한 수신자를 포함한 시청자를 말한다. 방송의 종류는 전송수단에 따라 지상파방송, 종합유선방송, 위성방송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방송 통신의 융합으로 등장한 인터넷 방송 등 그 종류가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방송국 설립 배경]

8·15광복 당시 전국 주요 도시에는 방송국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제주에는 방송국이 설립되지 않아 정상적인 방송 청취를 할 수 없었다. 광복 직후 사회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제주 도민들은 정국 판단과 생활 안정을 위한 새로운 정보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제주도 당국은 1946년 11월 조선방송협회(朝鮮放送協會)에 제주방송국 설치를 진정했다. 조선방송협회는 1947년 들어 일본으로부터 방송 장비를 수입하고 제주에 방송국 설치를 위한 현지 조사를 마쳤으나, 제주 4·3사건과 5·10총선거 후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면서 늦어졌다.

그런 가운데 1950년 한국전쟁을 겪게 되자 후방 안전 기지인 제주에 방송 보루를 건설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한국전쟁으로 제주에는 육군 제5훈련소가 설치되고 1만 여 명의 피난민이 들어와 학교·공공 시설·가정집 등에 분산, 수용되었다.

일시에 많은 피난민이 제주에 들어오자 심한 식량난을 겪었고 각종 질병도 번졌다. 이러한 사회 불안 속에서 수시로 변하는 전황을 알려 북한군을 물리치려는 국민 의지를 결집시켜야 했고, 주민과 피난민들을 위문할 전파 매체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면서 제주에 최초의 방송국이 개국되었다.

[공영 라디오 방송]

한국전쟁 중인 1950년 9월 10일 한국방송공사(KBS) 제주방송국 라디오 방송이 개국되었다. 시설과 인력이 빈약하고 출력도 50w 정도로 학교 방송 규모였으나, 전파 매체의 불모지 제주에 방송 문화의 첫 씨앗을 뿌렸다.

KBS제주방송국 라디오 방송은 제주시 이도2동 제주무선국 수신소 건물(60평)을 임대하여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고 호출 부호 HLKS, 주파수 1,080㎑, 출력 50w로 전파를 발사하여 남한에서 11번째 지방 방송국으로 개국했다.

개국 당시 가청권은 제주시 중심 지역에 한정되었고, 라디오 보유 대수는 200여 대에 지나지 않았다. 방송 장비는 차츰 보강되었고, 1960년대에는 체신부 자산이었던 부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이양받아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이듬해 3월에는 주파수를 800㎑로 변경하는 한편, 출력을 1㎾로 증강했다. 또 60m 철탑을 건립하여 수직 안테나로 무지향(無指向) 송신을 하게 되자 혼신 등이 없어져 방송 상태가 한층 개선되었다.

1962년 1월 서귀포 라디오 중계소를 개소하고 호출 부호 HLCF, 출력 1㎾, 주파수 1,240㎑로 방송을 중계함으로써 한라산 남쪽 난청 지역의 문제를 해소했다. 서귀포 라디오 중계소는 서귀읍 동홍리 대지 3,000여 평에 건평 26.5평 규모로 출발했다가 서귀읍 하효리로 이전해 출력을 10㎾로 증강하고 주파수를 620㎑로 변경했다.

1971년 4월에는 방송 시설 확장 공사를 시작하여 연주소와 함께 운영하던 송신 시설을 아라송신소로 이설했고, 출력도 10㎾로 증강하면서 주파수는 963㎑로 변경했다. 그 외에도 그 해 11월에는 고산중계소를 개소함으로써 제주 전역의 난청 구역을 완전히 해소하게 되었다.

[민간 라디오 방송]

1961년 5·16군사쿠테타 이후 정부는 신문 통신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는 대조적으로 방송 문호를 개방하여 상업 방송의 시대를 열었고, 국영 방송의 시설을 확장하여 난청 지역을 해소해 나갔다.

당시 제주 지역에서는 청취할 수 없었지만, 한국문화방송(MBC, 1961. 12. 2 개국), 동아일보사의 동아방송(DBS, 1963. 4. 25 개국), 삼성그룹의 동양방송(TBC, 1964. 5. 9 개국)이 각각 서울에서 개국하여 상업 방송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MBC는 1970년대 초까지 지방의 21개 민간방송사를 계열화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제주 지역 최초의 민간 상업 방송인 제주문화방송은 1968년 9월 14일 남양방송(南洋放送)으로 라디오 방송의 전파를 발사했다. 호출 부호 HLAJ, 출력 10㎾, 주파수 770㎑였고, 호출 명칭은 NBS로 정했다.

연주소는 제주시 삼도1동 소재 건물(90평)에 주조정실과 부조정실을 갖추었고, 송신소는 제주시 도련동 부지 3,000여 평에 갖추었다.

회사명은 창사 당시 남양방송(NBS)에서 1971년 10월 남양문화방송(南洋文化放送, MBC), 언론 통폐합 후인 1984년 1월부터는 제주문화방송(濟州文化放送, MBC)으로 바뀌었다.

[텔레비전 방송]

우리나라 텔레비전(TV) 방송은 1959년 5월 미국 RCA한국대리점에서 설치한 HLKZ TV의 시험 전파를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국영 방송(KBS TV, 1961. 12. 31 개국)과 민간 방송인 동양텔레비전(TBC, 1964. 12. 7 개국), 문화방송텔레비전(MBC TV, 1969. 8. 8 개국)이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제주 방송에서도 20년간의 라디오 안존 체제에서 벗어나 1970년을 기점으로 텔레비전 방송이 등장하게 되었다. 텔레비전 방송은 매스미디어 중에서 가장 막중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대중문화에 큰 변혁을 가져왔다.

제주 지역의 텔레비전 방송은 제주문화방송(제주MBC, 1970. 8. 1) 개국에 이어 제주방송국(제주KBS, 1971. 4. 20)이 개국했다.

[공영방송 체제]

1980년 언론 통폐합으로 KBS와 MBC는 모두 공영 방송 체제를 도입했다. 언론 통폐합 조치를 통한 방송의 공영화는 TBC를 KBS에 흡수시키고, MBC 주식의 70%를 KBS에 귀속시키는 KBS 독점 체제의 공영제를 수립했다.

언론 통폐합으로 방송 운영권을 장악한 신군부 정권은 외면적으로는 방송 프로그램의 정화를 통한 건전화를 내걸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규제를 강화했다.

1987년 6·29선언 이후에는 새로운 방송법을 제정하여 공영 방송 체제를 유지하고, 방송 민주화를 표방했다. 1990년 「방송법」 개정 때에는 방송의 구조 개편이 단행되었는데, 이때의 방송 구조 개편은 분리 개편으로 실질적인 다채널 시대를 가져왔다.

공영 방송 체제에서 제주 지역 방송은 시설의 현대화와 KBS 2TV, 3TV 등 채널을 확충하고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 컬러텔레비전 방송은 제주KBS제주MBC가 1980년 12월 같은 시기에 개국했다. 컬러텔레비전 방송은 프로그램에 대한 인지도와 흡인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색조에 대한 감수성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또 KBS 2TV와 교육방송인 3TV도 시설을 갖추어 1981년부터 시청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제주 지역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폭이 넓어졌다. 애월읍 고내봉과 한림면 금악봉에는 무인 중계소를 갖추어 UHF채널로 텔레비전 방송을 중계하여 제주 서부 지역의 난시청 지역을 해소했다.

라디오 방송은 1983년 9월 양사 FM 방송이 동시에 개국하여 음악 방송을 송출하고, KBS 교육FM 방송도 제주 전 지역에서 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제주KBS제주MBC는 1980년 제주시 연동에 신사옥을 건축하여 이설하고 방송 장비를 현대화했다.

[종합 유선 방송]

정부는 1991년 12월 「종합유선방송법」을 제정하고 1993년 5월 케이블TV 구역을 고시하여 전국의 종합 유선 방송 사업자 규모를 확정했다. 이때 고시된 전국의 방송 구역은 116개 구역으로 분할되었고, 제주는 제주시와 북제주군,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의 2개 구역으로 지정됐다.

이 방송 구역은 1997년 2월 제2차 종합 유선 방송 사업자 허가구역을 10만 가구 내외 기준에서 20만 가구 기준으로 광역화하여 재조정 고시했다. 이때 제주 지역의 케이블TV 허가구역은 2개 구역에서 1개 구역으로 조정되어 구역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제주종합유선방송(약칭 KCTV제주방송)은 1995년 5월 1일 개국하여 제주에 다채널 시대를 열었다. KCTV제주방송은 개국 초기 21개 채널을 운영했으나 2006년 현재 PP(program provider) 186개 채널과 FM 50개 채널, 데이터 방송 1개 채널을 서비스하고 있다.

채널 가운데 1개 채널(CH 5)은 자체 채널로 종합, 편성하여 보도·교양·오락 부문을 편성하고 있다. 또 제주 지역의 읍·면에서 운영되던 중계 유선 13개 채널을 인수하여 단일화했고, 2005년 3월에는 제주시 연동에 신사옥을 건축하여 시설을 현대화했다.

가입자는 서귀포 지역 전송망을 완공한 1999년 10월 2만 6,600 가입자에서 2006년 말에는 16만 가입자를 확보하여 가입 대상 19만 가구의 84%를 점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민영 방송]

민영 방송은 1980년 신군부 정권에 의해 단행된 언론 통폐합 조치로 문을 닫았고, 그 이후 공영 방송 체제만 유지되어왔다. 새로운 민영 방송의 등장은 방송 구조 개편의 근거를 만든 1990년 「방송법」 개정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개정 「방송법」에 따라 1991년 3월 새로운 민영 방송인 서울방송(SBS)이 허가되어 개국함으로써 11년 만에 공·민영 방송 체제가 부활되었다.

지역 민영 방송도 연차적으로 허가되었다. 1994년 부산·대구·광주·대전 등 4개 지역, 1996년에는 인천·전주·청주·울산 등 4개 지역, 2001년에는 강원 지역, 그리고 2002년에는 제주 지역 민영 방송이 허가되어 공·민영 방송체제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제주 지역의 새로운 민영 방송 JIBS제주방송은 2002년 5월 31일 개국했다. 회사 명칭은 제주국제자유도시방송(약칭 제주방송)으로 확정하고 호출 명칭은 JIBS(Jeju Free International City Broadcasting System)로 정했다. 제주방송의 허가 채널은 제주시·북제주군 지역에 UHF 채널 22, 출력 10㎾로, 서귀포·남제주군 지역에 채널 21, 출력 1㎾이다.

제주 방송은 SBS의 네트워크 형태를 갖춤으로써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연주소는 제주시 연삼로 변에 사옥을 신축하고 송·중계소는 제주시 견월악, 서귀포 삼매봉에 시설했다. 2003년 6월 1일에는 FM음악방송을 개국했다.

[특수 방송]

특수 방송의 설립은 기존 지상파방송과 더불어 제주 지역 라디오 방송의 다채널을 구축하는 한편, 방송 서비스 경쟁을 통해 다원화된 청취자들에게 채널의 선택 폭을 넓히고 있다.

제주 지역의 특수 방송으로서는 제주극동방송(FEBC - Korea Jeju)이 1973년 6월 30일 아세아방송 제주송신소로 개국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러시아·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과 남방 지역을 대상으로 하루 24시간 기독교 선교 방송을 하고 있다.

제주극동방송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연주소와 송신 시설을 갖추고 출력 250㎾, 주파수 1,566㎑, 호출 부호 HLAZ로 방송 중이다.

또 다른 기독교 선교 방송인 제주기독교방송(CBS)은 2001년 6월 12일 개국하여 기독교 선교뿐만 아니라 뉴스·시사·정보 등의 프로그램을 24시간 방송하고 있다.

제주기독교방송제주시 연동 기독교선교회관에 연주 시설을 갖추고 표준FM으로 방송하고 있는데, 주파수는 제주시 93.3㎒, 서귀포시 90.9㎒이고 출력 3㎾, 호출 부호 HLKO이다.

국제방송교류재단(KIBF)에서 2003년 9월 1일 개국한 아리랑영어FM방송제주시 이도2동 제주지식산업진흥원 빌딩에 방송 시설을 갖추고 있다.

송·중계소는 제주시 견월악송신소(출력 3㎾, 주파수 88.7㎒)와 서귀포 삼매봉중계소(출력 1㎾, 주파수 88.1㎒), 서부중계소(출력 100w, 주파수 88.1㎒)를 설치하여 제주 전역을 청취 구역으로 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서울국제방송교류재단 라디오방송본부에서 제작하고, 한국통신(KT) 광통신망을 통해 연주소에서 수신한 후 송·중계소로 송출하여 방송하고 있다.

[제주시 방송 현황]

제주 지역에 허가된 방송국으로는 TV, DTV, AM, FM, 표준FM방송 등 지상파방송과 케이블방송이 있다. 지역 내에 있는 방송사를 보면 법인 회사로는 1개 회사가 있지만, 방송법상 허가된 방송국은 모두 23개국이다.

지상파 방송 20개국, 케이블 방송 3개국인데, 분야별로 보면 TV 4개국, DTV 4개국, AM 4개국, FM 6개국, 표준FM 2개국이다.

방송사별로는 제주KBS가 TV 2개국, DTV 2개국, AM 2개국, FM 1개국, 표준FM 2개국 등 9개국이고, 제주MBC가 TV 1개국, DTV 1개국, AM 1개국, FM 1개국, 표준FM 1개국 등 5개국이다. JIBS제주방송은 TV 1개국, DTV 1개국, FM 1개국 등 3개국이 있고, 특수방송으로 제주극동방송 1개국(AM), 제주기독교방송 1개국(FM), 국제방송 1개국(FM)이 있다. 이외에 EBS교육방송은 제주 지역에 TV 중계소 2곳, FM라디오 중계소 2곳을 설치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KCTV제주방송은 케이블망으로 TV방송 1개국, FM방송 1개국, 데이터 방송 1개국을 운영하고 있다. 지상파방송은 1국 1채널인 데 비해, 케이블 방송은 TV망 186개 채널(디지털 115개, 아날로그 70개, VOD 1개), FM 50개 채널(디지털 30개, 아날로그 20개), 데이터 방송 1개 채널을 전문 분야별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 지역에서 허가되지 않았으나 시청 가능한 방송 채널은 국내·외 위성방송, DMB 등이 있다.

[라디오 수신기 보급]

방송의 초창기에는 라디오 수신기가 보급되지 않아 청취율이 매우 낮았다. 전국의 라디오 수신기는 1927년 경성방송국 개국 당시 1,440대에서 5년 후인 1932년 말에 2만 565대, 일제 말기에는 30만 대를 넘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라디오 수신기 보급은 정부 수립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문화공보부 통계로 보면, 1957년부터 삼양전기와 금성사가 라디오 수신기를 제작하여 보급하기 시작하자 1960년에는 42만 대로 늘어났다. 1962년부터는 ‘농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이 전개되어 농·어촌까지 라디오 청취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주 지역은 라디오 방송의 선호도가 높아지던 시기에 텔레비전 방송이 개국되어 1970년대 상반기까지 라디오 수신기 보급이 둔화 현상을 보였다. 텔레비전의 위협을 받은 라디오 방송은 한동안 침체되었으나, 이동 인구의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과 TV 난시청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라디오 수신기 보급은 다시 성장했다.

제주 지역의 연도별 라디오 수신기의 보급 추세를 보면 가구 대비 보급률이 1970년 48%, 1975년 69%, 1980년 98%에서 1984년 104%로 전 가구에 라디오가 보급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대량 생산 보급되면서 가구당 라디오 수신기 보급률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때부터 개인용 휴대 수신기와 차량 부착 라디오 수신기가 일반화되어, 언제 어디서나 라디오 방송 청취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

우리나라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은 1970년대 들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그 이전에는 도시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제주도의 TV 수상기 보급은 제주MBC TV가 개국한 1970년에는 961대로 보급률이 1.2%에 불과해 전국 평균 보급률 6.4%보다 훨씬 뒤진 상태였다.

그러나 제주도민의 소득이 증가하고 전기 시설이 급속하게 보급되면서 TV 수상기 보급 대수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래서 KBS TV가 제주 지역 방송을 시작한 1978년에는 5만 여 대로 보급률 50%, 1980년에는 73%, 1984년에는 보급률 88%에 이르렀다.

같은 해 12월에 흑백 수상기에 대한 시청료 면제 조치가 단행되었고 1985년부터는 컬러 수상기만을 등록 대상으로 했다. 컬러화 후에는 수상기 보급이 10만 대를 넘었으며 1994년에는 제주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가정에 TV 수상기가 보급되어 온 국민이 100% 컬러 방송을 시청하기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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