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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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漢明 |
영어음역 | Yu Hanmy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나영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활동사항]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1696년(숙종 22) 10월 전라우수사 재임 중 이익태(李益泰)[1633~1704]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699(숙종 25)년 5월에 떠났다.
이때 함께 재임한 제주판관은 이석신(李碩臣), 정의현감은 신성원(愼聖源)·이한장(李漢章), 대정현감은 김경(金磬)·이만재(李萬材)[1641~?] 등이었다.
제주목사 재임 중인 1698년 봄에 삼을나묘(三乙那廟, 지금의 삼성사)를 동쪽 가에 세우고 박심당(博審堂)을 귤림서원(橘林書院) 안에 세웠으며, 여름에 말 200필을 우도(牛島)에 방목하여 민생 문제를 도왔다. 제주목사 시절 목민관으로서의 공적을 기려 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