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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089
한자 濟州女性
영어음역 Jeju Yeoseong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집필자 김순이

[정의]

역사적 조건과 지리적 조건 속에서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굳센 의지로서 삶을 일군 제주도의 여성.

[개설]

제주 여성은 주어진 여건이 최악의 상태일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궁리하고 도전하며 헤쳐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자신에게 불리한 공간조차도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공간으로 바꾸어놓는 것이 제주 여성의 뛰어난 점이다.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위기의 순간에 더욱 강해지는 여성이야말로 제주 여성이라 할 수 있다.

[제주 여성의 삶과 역사]

1629년(인조 7)부터 제주 여성은 출륙 금지(出陸禁止)를 당하여 약 250여 년 동안 섬에 갇혀 살아야 했다. 계속되는 흉년과 과중한 진상, 부역으로 인하여 제주민들이 육지로 속속 이주하면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자 취해진 조치였다. 어머니이며 아내, 딸인 여자들을 인질로 삼아 육지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출륙 금지가 실행된 250여 년 동안 공식적으로 제주도 밖으로 나갔던 여성은 김만덕(金萬德) 한 사람뿐이었다. 1794년(정조 18) 전 재산을 내놓아 제주도 백성을 구휼했던 그녀의 소원이 육지를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왕명에 의해 그 바람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갇혀 있다는 것, 일정한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고통으로, 격리 단절의 고통, 소외의 고통, 죄인 취급을 당하는 고통을 의미한다. 제주 여성은 제주도에서 태어났다는 죄 아닌 죄로 인하여 억압의 상태로 많은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1876년(고종 13)에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어 개항(開港)이 이루어지면서 출륙 금지가 사실상 사라지자 많은 제주 여성들이 뭍으로 진출하였다.

배우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직업을 찾아서 육지는 물론,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행동 반경은 급속한 공간 확장을 가져왔다.

1910년대 경기고녀에 진학한 강평국(姜平國)을 비롯하여 서울 유학길에 오른 여학생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1926년 서울 탑골공원에서 촬영한 ‘영주 유학 졸업 기념(瀛洲留學卒業紀念)’ 사진을 보면 약 50여 명의 여학생들이 서울의 경기고녀, 숙명고녀 등에서 향학의 열정을 불태웠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중반기인 1930년대, 출가한 해녀의 공식적인 숫자를 보면 경상남도로 간 경우가 1,581명으로 가장 많고, 전라남도 367명, 전라북도 7명, 경상북도 308명, 충청남도 141명, 강원도 60명, 함경남도 106명, 황해도 14명 등 2,584명이었다.

일본으로 출가한 해녀는 주로 제주도와 환경이 비슷한 쓰시마[對馬島]로 간 경우가 686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시즈오카[靜岡] 365명, 고지[高知] 95명, 가고시마[鹿兒島] 18명, 도쿄[東京] 144명, 나가사키[長崎] 54명, 지바[千葉] 67명, 에히메[愛媛] 35명, 가나카와[神奈川] 15명, 아오시마[靑島] 28명, 미에[三重] 41명 등 약 1,548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숫자일 뿐이며 이보다 훨씬 많은 출가 해녀들이 중국의 다롄[大連],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및 한반도와 일본의 바다 구석구석을 누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녀뿐만 아니라 방적(紡績) 공장과 각종 군수품 공장, 혹은 가내 수공업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군대환(君代丸)이나 복목환(伏木丸)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여성들도 많았다.

일본은 제주도의 자원을 실어 나르는 한편 제주 여성의 근면하고 강인한 노동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일본과 제주도 사이에 왕복 선박을 운항할 정도였다.

조선시대에 아무 죄도 없이 섬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제주 여성들에게 일제강점기는 오히려 억압되고 격절되었던 외부와의 문호가 개방된 시기였으며 새로운 영역과 미래에 대한 도전이 주어진 시기였다.

[제주 여성의 저력]

학식의 유무에 관계없이 제주 여성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도전과 지혜로움이 공통 인자로 자리 잡고 있다. 바다로 둘러싸인 자연 환경 속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악조건들을 타개하여 활로를 찾으려는 오랜 궁구(窮究)의 결과였다.

조선왕조 250여 년 동안 굳게 걸어 잠긴 문 안에서 제주 여성의 행동 반경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내적, 정신적 능력은 제대로 발휘될 수 없었다. 그러나 출구가 열리면서 응축된 제주 여성의 DNA는 도전 정신과 뛰어난 적응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강렬한 기세로 분출하였다.

출가 해녀들이 철새처럼 봄이 되면 젖먹이도 떼어놓고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이별하고 육지로 나갔던 것을 단순히 돈벌이가 목적이었다고만 볼 수는 없다. 제주 여성의 내면에 억압되었던 더 넓은 공간에 대한 갈구,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이 그들을 먼 곳으로 떠나게 한 원동력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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