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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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器 |
영어음역 | Togi |
영어의미역 | Potte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고대 |
집필자 | 강창화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개설]
신석기 시대 이래로 대표적인 산물인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낸 용기이다. 토기는 과거의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 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나무 용기 등을 토기 대신 사용하였다. 그러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든 후 말려서 쓰다가,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토기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토기는 보통 500~1000°C 이하에서 구워진다.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질그릇이라 하고, 유약을 바른 것을 도자기라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적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유약이 입혀진 자기를 제외하고 모두 토기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의 토기 흐름은 신석기 시대의 유문 토기, 청동기 시대의 무문 토기, 원삼국 시대의 타날문 토기, 삼국 시대의 회색 도기, 통일신라 시대의 질그릇 등으로 요약된다.
[변천]
현재까지 제주도 토기의 시기별 변화 단계는 크게 5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유문토기(신석기 시대 토기) 단계이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토기로 알려진 제주도산 고산리식 토기(원시 무문양 토기)에서 출발한 유문 토기 단계는 그후 덧무늬 토기(융기문 토기)로, 다시 신석기 후기에는 북촌리식 토기로 이어진다.
둘째, 구멍무늬 토기(공렬 토기)로 대표되는 상모리식 토기가 사용되는 무문 토기 시대(청동기 시대) 단계이다. 셋째, 구멍무늬 토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육지산 점토대 토기가 공반하는 탐라 형성기(초기 철기 시대)의 삼양동식 토기 단계이다. 넷째, 곽지 패총에서 다량 출토된 외반 구연 항아리로 대표되는 탐라 전기의 토착화된 곽지리식 토기 단계이다.
다섯째, 곽지리식 토기에서 전문화된 직공 체제로 이어지는 탐라 후기의 제품화된 고내리식 토기 단계이다. 이때 육지산 회청색 경질 토기(회색 도기)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한반도의 발달된 도기 제작 기술이 고내리식 토기에 적용된다. 그후 우리나라 마지막 무문 토기 소성으로 만들어진 고내리식 토기는 고려 시대로 접어들면서 도자기와 질그릇 용기의 유입과 함께 서서히 그 막을 내린다.
제주도 상고 시대 시기 구분과 정치·사회적인 변화에 따른 토기 문화의 변화와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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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토기 문화의 변천
[유형]
1) 고산리식 토기(기원전 10,000~8,000년)
우리나라에서 고산리 유적에서만 출토되는 특징적인 토기이기 때문에 고산리식 토기(원시 무문양 토기, 식물성 섬유질 혼입 토기)로 명명되어 있다. 이 토기는 한반도에서 기존에 출토된 유문 토기와 구별되며, 그릇 표면에 식물체를 보강제로 이용한 원시형의 고토기이다.
기형은 평저 발형이 대부분이며, 높이 15~20㎝ 정도의 소형 토기들로 추정된다. 색조는 대부분 적갈색을 띠며, 토기 내·외면에 불에 탄 식물 줄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러한 섬유질 토기는 아무르강 유역의 초원 지대에 자리한 1만 년 전의 고토기 유적에서 일부 확인된 바 있다.
2) 고산리 덧무늬 토기(기원전 8,000~6,000년)
이 토기는 고산리 해안 단구에서 수습되었는데, 현재까지 1점만 확인되었다. 구연부 직경이 50㎝에 이를 정도로 넓은 아가리가 특징이며, 두께는 0.8㎝이고, 바닥은 평저이다. 토기의 태토는 자잘한 모래가 섞인 점토질로 적갈색 내지 황갈색을 띠고 있다.
전체적인 기형은 강원도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대발형이다. 융기 문양은 반원형의 비교적 굵은 점토띠를 구연부 아래에 'S'자형으로 세 줄 장식한 태선융기문 또는 융대문 형식이다. 이 토기와 동일한 문양 모티브는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바 있다.
3) 북촌리식 토기(기원전 3,000~1,000년)
한반도 신석기 시대 후기 단계를 대표하는 압인·압날 점렬문 토기군이다. 북촌리 압날문 토기 단계는 앞선 단계와 구연부 형태를 비교해 보았을 때 직립 구연 형태가 지속되면서도 외반 구연 형태가 새롭게 출현하는 시기이다.
문양은 구연부 아래에 기하학적 점렬문과 침선문을 시문하였고, 구순 형태도 구연 상면을 평평하게 처리했다. 압인 점렬문 토기는 삼각형·원형·부정형의 시문구로 1-4줄의 평행 또는 기하학적 점렬문이 시문되어 있다. 단일 점렬과 다중 점렬문 토기는 북촌리 유적을 지표로 월령리·삼양동·사계리 유적 등에서 확인된다.
4) 상모리식 토기(기원전 600~300년)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청동기 시대 무문 토기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이 토기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구연부에 구멍무늬를 눌러 장식하거나 입술면에 톱날 같은 무늬를 만든 것으로 함경도 지방에서 남한 지방으로 퍼져 나간 유형이다.
둘째, 구연부를 이중으로 하고, 그 부위에 짧은 빗금무늬를 연속으로 그어 장식한 것이다. 이는 평안남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성행하여 그 일부가 남한 지방에 파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셋째, 앞의 두 유형의 속성이 복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이중 구연과 연속 빗금무늬 장식에 구멍무늬 또는 골아가리 장식이 덧붙여진 유형이다.
5) 삼양동식 토기(기원전 200~기원후 200년)
제주시 삼양동 유적에서 집중 출토되어 명명된 토기 형식이다. 토기의 특징은 구연부가 직립하거나 외반 각도가 대체로 약하고 짧은 편이며, 심발형과 옹형의 무문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옹형 토기는 최대경이 동체부 중앙과 상단에 위치하는 형식이지만, 전체적으로 구경과 저경의 비례가 비교적 안정감을 준다. 심발형 토기는 저부가 비교적 좁고 구연이 넓은 형식으로 무문 토기 중기 이후의 기형과 유사하다. 그러나 저부에서 몸통으로 이어지는 굽이 조임 없이 연결되고 바닥 안쪽이 들려 있으며, 테쌓기 수법과 목판 조정흔 등이 남아 있는 점은 남해안 종말기 무문 토기의 제작 수법과 같다.
6) 곽지리식 토기(200~500년)
이 토기가 이전의 무문 토기와 다른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릇 두께가 매우 두텁다는 것이다. 특히, 앞 시기 무문 토기와 다음 시기에 등장하는 고내리식 토기와 구분되는 특징은 기종과 기형에서 나타난다. 곽지리식 토기는 항아리·바리·원뿔형 토기·컵형 토기·뚜껑형 토기·여러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토기 등 여러 종류의 기종이 나타난다. 그중 전체 개체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항아리형 토기이다. 또한 기형상으로는 그릇의 아가리가 밖으로 크게 벌어진 외반형이 특징이다. 특히, 곽지리식 토기는 기형과 제작 수법 등에서 제주의 지역성을 말해 주는 토착화된 토기이기도 하다.
7) 고내리식 토기(500~900년)
이 토기는 납작 바닥과 짧게 외반된 구연부가 특징이다. 아가리의 외반도가 10°정도 밖으로 벌어져 보통 30°가 넘었던 곽지리식 토기와는 대조를 이룬다. 목의 길이도 높이의 1/20 정도로 곽지리식 토기보다 매우 짧다. 반면에, 높이에 비해 바닥과 아가리의 지름 비율은 상대적으로 커져서 안정감을 준다.
기종은 매우 단순하여 대소만 차이가 있을 뿐이며, 규격화·제품화된 성격이 강하여 전문적인 생산 체제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 토기는 남한 지방에 회색 도기가 대량으로 보급될 무렵 제주도에서 성행했던 토기이다. 그 기본 제작 방법은 회색 도기의 영향을 받았으나 소성 방식에서 차이가 나는 순수 제주도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