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06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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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節婦岩 |
영어음역 | Jeolbuam |
영어의미역 | Jeolbuam Rock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동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1년 8월 26일 - 절부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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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절부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석조 문화재 |
건립시기/연도 | 조선 말기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
소유자 | 제주시 |
문화재 지정번호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조선 말기 절부(節婦) 고씨(高氏)의 절개를 기리는 바위.
[개설]
절부암은 1981년 8월 26일 제주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바위로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조난당한 남편을 기다리다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고씨 부인의 비통한 사연이 전해오는 곳이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경위]
옛날 용수리 마을에 강사철과 고씨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 처녀는 조실부모하여 남의 집 살이를 하였으나, 남달리 착실하여 동네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강사철과 인연이 닿아서 백년해로를 맺고 단란하게 지내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사철은 생계를 위해 바다에 고기잡이에 나섰다. 때마침 거센 풍랑을 만나 목숨을 잃었다. 아내는 바닷가를 석 달 동안이나 돌아다녔고, 시체나마 찾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끝내 허사였다.
체념한 아내는 남편의 뒤를 따르기 위해 목을 매고 만다. 신비롭게도 그날 밤 남편의 시체는 절벽 밑으로 떠올랐으므로 사람들은 “고씨야말로 조아(曹娥)의 포시(抱屍)와 같다”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1866년(고종 3) 판관 신재우는 고씨가 자결한 바위에 절부암이라 새기게 하고 관에서 강사철과 고씨 부부를 합장하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전(祭田)을 마련하여 용수리민으로 하여금 매년 3월 15일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만대에 기리게 하였다.
[현황]
오늘날에도 마을에서는 해마다 이들의 산소를 소분하고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