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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속오군적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596
한자 濟州束伍軍籍簿
영어음역 Jeju Sogo Gunjeokbu
영어의미역 Muster Roll of Sogo Troops in Jej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4월 17일연표보기 - 제주속오군적부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제주속오군적부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문헌|고문서
용도 병적기록부
발급일시 조선 숙종(肅宗)[1661~1720]
소장처 제주시청 지도보기
소장처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 1176-1[광양9길 10]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 제주시청에 있는 17세기 후반인 조선 숙종(肅宗)[1661~1720] 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 지역 속오군의 소속과 신원을 적어 놓은 명부.

[개설]

속오군은 조선 후기 속오법(束伍法)에 따라 편성된 예비군 조직인 지방 군대이며 속오군적부는 지금의 병적기록부와 같은 속오군의 명부 자료이다. 제주속오군적부는 화첩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보물 제652-6호)를 해체, 보수하기 위해 표지와 속지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제주속오군적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제주도의 속오군 총수는 3,369명으로 추정된다.

[형태]

가로 42㎝, 세로 44.5㎝ 크기의 한지 58면으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중앙의 판심을 중심으로 한 면에 13칸, 양면에 26칸이 되도록 줄을 쳐서 26명의 인원을 적을 수 있도록 하였다. 각 행에는 연(나이)·부(父)·계(係: 소속 고을)·주(住: 거주지)·면(面: 얼굴 모습)·수(鬚: 수염 상태)·흔(痕: 흉터)·예(藝: 기예)자 등의 목활자를 위아래로 띄엄띄엄 찍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필요한 인적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천총(千摠), 파총(把摠), 초관(哨官) 등은 직명·성명과 계·주·예만 기록되어 있다.

각 행의 상단에는 대오 편성의 순서와 그 아래로 직역·성명·나이가 쓰여 있다. 대오는 천총과 천총차비군, 파총과 파총차비군, 초관과 초관차비군, 기총·대장·대원의 순서이며 그 아래에 직역이 기록되어 있다.

직역은 대부분 시노(寺奴)·사노(私奴)·정병의 3종이며, 나이는 15세에서 59세까지 속오군에 편입되어 있는데, 이 점은 정군이 16세부터 60세까지를 그 대상 연령으로 하는 것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연령층은 20대가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 30대, 40대의 순이고 50대에 와서는 그 수가 급격히 감소된다.

‘부(父)’자 아래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는데, 동일한 부명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형제가 같이 속오군에 편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계(係)’자 아래에는 제주목·정의현·대정현 등의 소속 고을, ‘주(住)’자 아래에는 거주지의 마을 이름을 적고 있다.

‘면(面)’자 아래에는 얼굴색이나 얼굴 모습을 적고 있는데, 얼굴색은 대부분 철(鐵: 검다)로 표기하였으며, 전(縳: 희다)으로 표기된 곳도 있다. 얼굴 모습은 마(麻: 곰보), 잠마(暫麻: 조금 곰보)로 표기하였다.

‘수(鬚)’자 아래에는 수염이 난 상태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생김새나 신체상의 특징을 적은 파기(疤記)가 기록되어 있다. 끝으로 ‘예(藝)’자 아래에는 그 사람의 기예를 창(鎗)·사(射)·포(砲)·도(刀)의 네 가지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이후 제작된 제주속오군적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군적부로서 조선 후기 지방군의 근간인 속오군 연구에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사료라 할 수 있다. 2002년 4월 17일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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