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2044 |
---|---|
한자 | 圓明禪院石造如來坐像 |
분야 | 종교/불교,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두길 34[화북 1동 468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종진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 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 여래 좌상.
[개설]
원명선원 석조여래좌상은 응회암으로 조성된 불상으로 18세기에 제작되었다. 좌상 형태의 불상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나발(螺髮)을 제외하고 전체를 금빛으로 칠했다. 불상을 받치는 대좌(臺座)는 없다. 18세기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여래 좌상으로 조선 후기 불상 대부분이 목조 불상인 점에 미루어 석조 불상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여 2008년 12월 2일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원명선원 석조여래좌상은 가부좌를 튼 좌상 형태의 불상으로 전체적인 비율로 보면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고 고개가 앞으로 약간 숙여진 모습이다. 또한 머리, 손 등이 크게 표현되어 둔중한 느낌을 준다. 머리가 둥글게 표현됨으로써 부처의 지혜를 상징한다는 육계(肉髻)와 구별되지 않는다. 머리 중간과 중앙에는 반달과 원통 모양의 계주(髻珠)가 자리하고 있다. 지긋이 반쯤 감긴 눈과 엷은 미소를 머금은 듯한 입에 얼굴의 턱과 뺨을 곡면으로 처리하여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겉에는 두 어깨를 모두 가리고 있는 통견(通肩)의 가사(袈裟)를 입고, 안에는 가슴을 가리는 속옷인 승기지(僧祇支)를 착용했다. 양손은 가부좌한 다리에 살포시 올려놓았으며, 발목 사이로 흘러내린 옷자락이 부채살 모양으로 퍼져 바닥에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이다.
[특징]
불상을 올려놓는 대좌 없이 불상만 남아있다. 불상 바닥에 복장물(腹臟物)을 넣었던 구멍인 복장공(腹臟空, 8.5cm×6.5cm×19.5cm)이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인상에 안정감이 좋고, 얼굴과 주름의 표현, 법의(法衣)를 입은 모습 등이 18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원명선원 석조여래좌상은 조선 후기에 목조 불상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석조 불상으로서 가치가 있으며, 얼굴과 주름의 표현, 법의(法衣)를 입은 모습 등이 18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