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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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秉九 |
이칭/별칭 | 백승(伯承)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연승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백승(伯承). 아버지는 문천군수 김학민(金学敏)이다.
[활동사항]
김병구(金秉九)[1809~1871]는 1840년(헌종 6) 성균진사에 장원급제하였다. 아버지가 여러 달 동안 병이 위중하여 입맛을 잃고 먹지 못하다가, 2월 한겨울 어느 날 살구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김병구는 살구를 구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살구나무를 안고 큰소리로 소리치며 우니 천지신명이 감동하여 갑자기 나무에서 잘 익은 살구가 떨어졌다. 아버지는 이 살구를 먹은 후 입맛이 살아나고 정신도 맑아지면서 점차 병세가 나아졌다. 이듬해 다시 아버지의 병환이 위중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게 한 후 다시 깨어나게 하였다.
훗날 부친상을 당하여 안방에 차린 빈소에 도둑이 들었는데, 그로 인해 바람이 세차게 일어나며 불이 나 빈소까지 불길이 번지려 했다. 김병구는 관을 안고 큰소리로 곡을 하며 함께 타 죽으려고 하자 기이하게도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불어 불이 꺼졌다. 그 후 어머니의 머리에 난 종기가 목에까지 퍼져 매우 위독했다. 김병구는 아침저녁으로 종기를 빨며 치료하여 석 달 만에 어머니 머리에 났던 종기의 뿌리가 빠지고 완전하게 낫게 되었다.
[상훈과 추모]
김병구가 세상을 떠나자 유림들이 글을 올려서 영읍(営邑)의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