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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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顯 |
영어음역 | Kang Hyeon |
이칭/별칭 | 현지(顯之),신안(新安),혜평(惠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현지(顯之), 호는 신안(新安), 시호는 혜평(惠平). 경상남도 산청 출신으로 강흥국(姜興國)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강행(姜行)이고, 아버지는 강문회(姜文會)이며, 어머니는 김윤(金允)의 딸이다.
[활동사항]
1513년(중종 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1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때 김안로(金安老)의 간사(奸邪)를 논핵하는 대간들의 의논이 일치하지 않자 극언하는 상소를 올렸고, 이로 인해 진도로 유배된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전라좌도어사로 나갔으며 교리·부응교·헌납·응교 등을 거쳐, 1526년 재해가 휩쓴 평안도에 순어사(巡御使)로 파견되었다. 1530년 종부시정으로서 충청도어사로 나갔으며, 1532년 직제학에 승진되었다. 이듬해 대사성·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537년 승지로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성주사고(星州史庫)가 불에 타자 파직되었다.
1542년 형조참판이 되었는데, 전에 함경도관찰사로 있을 때 많은 관인(官人)들을 사적인 일에 부렸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44년 판결사·내의원제조를 역임하고, 이듬해 공조참판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중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형조판서·한성부좌윤을 거쳐 1551년(명종 6) 경연특진관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