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0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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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今島海戰 |
영어음역 | Gogeumdo Haejeon |
영어의미역 | Naval Battle of Gogeumdo Islan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명철 |
성격 | 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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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598년(선조 31) 8월 1일 |
종결연도/일시 | 1598년(선조 31) 8월 1일 |
발생(시작)장소 |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당시 강진] |
관련인물/단체 | 이순신|진린 |
[정의]
1598년 이순신이 고금도에서 왜군을 크게 격파한 해전.
[개설]
고금도해전은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1598년 2월부터 이순신은 고금도에 내려와 진을 치고 있었는데, 8월 왜군이 고금도로 침입해 들어오자, 이순신이 직접 조선 수군을 이끌고 적중으로 돌격해 대파한 해전이다.
[발단]
1598년(선조 31) 2월 17일 충무공 이순신이 수군 8,000여 명을 거느리고 고하도(현 목포시 충무동)로부터 강진의 고금도(현재는 완도군)로 옮겨 진을 쳤고, 그해 7월 16일 명나라 장군 진린(陳璘)이 수군 5,000명을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했다. 8월 1일, 이순신은 진린과 연회를 벌이려고 하던 중 왜군 함대가 습격하려 한다는 보고를 받는다.
[경과]
고금도해전과 관련된 이야기는 1657년에 새로 편집된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선조 31년 8월 1일 갑인)에 이렇게 전한다.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적병을 강진(康津)의 고금도(古今島)에서 크게 격파했다. 이순신이 진린(陳璘)과 더불어 연회하려고 하는데, 적이 습격하려 한다는 보고를 듣고는 제장(諸將)으로 하여금 군사를 정돈해 대기하게 하였다. 얼마 후 적선(賊船)이 크게 이르자 이순신은 스스로 수군을 거느리고 적중으로 돌격해 들어가면서 화포(火砲)를 쏘아 50여 척을 불사르니, 적이 마침내 도망하였다.”
[결과]
고금도는 해수로의 요새지였는데, 고금도해전 이후 장흥, 고흥 등에 출몰하여 살육과 약탈을 일삼던 왜군이 순천 방면으로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이순신은 본영을 건설하고 피난민들을 거두는 일 등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공이 고금도에 이르렀을 때는 군의 위세도 장했거니와 섬 안의 민가만도 수만호에 달해 한산도 시절의 열 배나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