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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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鍾今 |
영어음역 | Park Jonggeu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북상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주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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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북상리 |
성별 | 여 |
생년 | 1911년 |
몰년 | 2002년 |
본관 | 경주 |
대표경력 | 대한민국 전몰군경미망인회 진도군지회 3대, 5대 회장 |
[정의]
일제강점기의 여성 독립운동가.
[개설]
1911년 6월 10일에 진도읍 북상리에서 박윤재와 김유덕의 8남매 가운데 3녀로 태어났다. 1932년 21세 때 조귀남(曺貴男)과 결혼하여 8남매를 두었다. 남편 조귀남은 한국전쟁 때 사망하였다. 장남 조삼현은 한양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이고 막내 조해월은 국립보건원 원장이다.
[학력]
1917년에 진도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4세부터 같은 마을 9촌 당숙인 독립운동가 박두재의 집에서 한학 공부를 했다.
[활동사항]
1927년부터 1932년까지 여성선전부장과 진도읍 여성부장을 맡는 등 6년간 항일 활동을 폈다.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전몰군경미망인회 진도군지회 제3대, 제5대 회장을 지냈다.
[의의와 평가]
청소년 조직에 가담하여 식구들 몰래 집을 빠져나가기 일쑤여서 아버지는 아예 대문방에서 감시했으나 짚신발로 담장을 훌렁 뛰어넘었다고 한다. 식구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도 ‘종금이가 시집가기는 벌써 틀렸다’고 했다. 그녀의 남성다운 활약을 동지들은 ‘자궁을 가진 남자’라 표현했다.
1995년 85세 때 박종금은 “임원회의 중 잡히면 죽는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고, 조직원 가운데서도 배신자가 있다면 동지들에게 살해당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긴박한 시대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