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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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斜上-洞祭 |
영어음역 | Sasang Maeul Dongje |
영어의미역 | Sasang Village Tutelary Festival |
이칭/별칭 | 사상마을 거리제,사상마을 당산제,사상마을 별신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사상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선 |
성격 | 민간신앙|마을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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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시기/일시 | 음력 1월 14일 24시 |
의례장소 | 사상마을 안 당산나무 |
신당/신체 | 팽나무|당할머니 |
제관 | 마을사람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사상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개설]
사상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 전야 자시에 제를 모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전통은 아직 한 번도 변하거나 중단된 적이 없이 이어오고 있다. 대개 정월 보름 전에 유사(초상이나 출산)가 발생할 경우 2월 초하루(진도에서는 이 날을 보편적으로 ‘하구달’이라고 부른다)로 옮겨서 제를 모신다.
당제 말고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는 없다. 오랜 옛날에는 충제를 지낸 적이 있지만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
사상마을의 당제는 흔히 당산제나 별신제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거리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현재 당집이 있는 권역을 당산나무골, 혹은 당산골이라고 부른다. 당산은 여기서 팽나무를 가리킨다. 다만 팽나무 몇 그루 중에 딱히 어떤 나무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당집은 원래 지금의 당나무인 팽나무 밑에 돌담으로 둥그렇게 축조되어 있었으나 1982년경 돌담 밖에다 현재의 당집을 짓고 돌담을 허물게 되었다. 현재의 당집은 사방 기둥을 한 콘크리트 기와집으로, 남도권역에서 흔히 발견되는 ‘모정’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곳을 ‘관란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산제를 지낼 때는 이 당집 주변으로 입구 쪽을 제외하고 비닐로 막는다. 신격은 당할머니로 통칭된다.
[제관의 선정 및 역할]
옛날에는 마을회의를 거쳐 제관과 제주, 집례를 선정했으나 지금은 마을 노인회에서 뽑는다. 2005년 제관으로는 양흥안(73, 남)이 선정되었다. 양씨는 근년에 계속 제관을 담당해오고 있는데, 그 횟수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오랫동안 제관을 맡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집례는 대체로 두 명에서 세 명 정도 선정된다. 당해의 사정에 따라서 숫자가 결정된다. 올해의 집례로는 오성옥(70, 남), 주대옥(63, 남)이 선정되었다. 올해의 제주는 이문교(78, 남), 강귀심(75, 여)이 선정되었다. 강씨는 이 마을에서 제주댁으로 불린다. 그만큼 자주 제주댁으로 선정되었음을 의미한다. 제관이 깨끗한 사람이어야 하듯이, 음식을 장만하는 제주댁도 맑고 좋은 곳에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깨끗한 사람을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절차]
14일 오후 8시경부터 마을회관에서 동네 어른 7~8명이 준비를 시작한다. 제관은 제주 댁에서 준비를 하고, 집례 두 사람은 마을회관에 있다가 저녁 8시 30분경 제관 댁으로 합류한다. 이날 오후부터 준비한 제물은 이 시간쯤이면 거의 마무리되고, 이때부터 메밥과 국을 끓이게 된다.
제당으로 옮기는 시간은 대개 자정을 전후한 시간인데, 올해는 11시 30분경에 제물과 집기들을 당으로 옮겼다. 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제주 집에서 흰옷으로 갈아입으며, 제관과 집례는 당집에 도착하여 의례복으로 다시 갈아입는다.
옷을 갈아입으면 집례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제관이 제물을 진설한다. 진설 후 바로 제사에 들어가는데 절차는 일반 가정 제사와 매우 흡사하다. 다만 마을사람들 표현대로 ‘단잔에 제사를 끝내는’ 것이 특이하다. 즉, 잔을 한번 올리는 것으로 제사가 끝난다는 뜻이다. 제사를 지낼 때 풍물 등의 음악을 연주하지는 않는다.
음식을 진설할 때 특별하게 고려하는 것은 없다. 제물 또한 일상적인 제사 음식과 비슷하다. 홍동백서, 좌포우혜 등의 제례시의 진설법을 준수하는데, 빨간 수탉을 사용하는 것이 특이할 뿐이다. 물론 홀기도 읽지 않는다.
‘단잔’을 올리기 전에 축문을 낭독한다. 축문은 헌식하고 난 다음에 소지하고, 음복을 한다. 음복은 제관이 가장 먼저 한다.
제사 음식은 제주 집에 두었다가 15일 오전에 마을의 어른들을 나오게 해서 잔치를 벌인다. 따라서 제주 댁은 진설했던 음식을 다시 거두어 가지고 간다. 근래는 노인당이 있기 때문에, 제사 직후 노인당으로 보내기도 한다. 대개 제사 지내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자정이 갓 넘은 시간이면 당산제 의례는 종료된다.
각각의 제사는 제의순서와 진설된 음식은 거의 유사하나 그 내용에서는 차별성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당산제의 상차림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그림〉 사천리 당산제 진설도돼지머리메국떡시루구운조기제주전포(오징어)전두부배끼구운 병어구운 장대숙주나물콩나물고사리나물삶은 달걀밤곶감배모사그릇배추나물사과명태 무침
〈그림〉 사천리 당산제 진설도
돼지머리
메
국
떡시루
구운조기
제주
전
포(오징어)
전
두부
배끼
구운 병어
구운 장대
숙주
나물
콩나물
고사리나물
삶은 달걀
밤
곶감
배
모사그릇
배추
나물
사과
명태 무침
제사가 끝난 다음에는 헌식을 한다. 헌식은 원래 당집인 둥근 돌담이 있던 당산목 아래에서 한다. 원래는 당산목 아래 개천가에서 했다고 한다. 헌식할 때는 “강보씨! 강보씨! 강보씨!” 하고 제관이 세 번을 외쳐 부른다.
그 다음 각 음식에서 한 숟갈씩 떠서 합친 헌식용 음식을 땅에 묻고 조용히 당으로 돌아간다. 이때 부르는 이름을 강보씨, 혹은 강복씨라고도 하는데 당산할머니와 연관된 인물 정도로 마을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헌식이 끝나면 다시 음복을 한다. 헌식절차까지 끝나면 음식을 나누어 들고 다시 제주 댁으로 간다.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약간의 음식들을 나누어 먹고 해산하면 당산제사의 제의 절차는 끝난다.
[제물/용품/제구]
제물은 제주로 선정된 이문교(78, 남), 강귀심(75, 여)이 준비한다. 특히 강씨가 주도적으로 음식을 장만하거나 준비한다. 제물 준비는 주로 진도읍장을 이용한다. 읍장이 당제일과 다소 떨어져 있을 경우에는 진도읍의 시장에서 구입하기도 한다. 제물을 장만하면서 가격을 깎거나 값에 대해 흥정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음식 준비는 14일 오후에 본격적으로 한다. 음식 준비가 거의 끝날 때쯤 마을사람들이 제주 댁에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고 담소하면서 당제사를 준비한다. 물론 오전부터 제관은 제주 댁으로 와서 축문 등의 제삿일을 준비하게 된다.
제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물목은 빨간 수탉이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오랜 옛날부터 그렇게 정해져서 바꾸면 안 되는 것으로 마을사람들은 인식하고 있다. 제주는 물론 전통시대에는 곡주인 청주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으나 요즘은 간편하게 소주를 사서 올린다.
[부대행사]
다른 마을과 달리 사상마을의 동제 뒤풀이는 다양하면서도 실속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눈에 띄는 행사는 14일 아침의 유지지세우기이다. 올해는 유지지대를 가구당 1개씩 67개를 만들어서 60개는 각각의 농가에 세우고, 쌍계사와 운림산방의 생가 본체, 역사유물관, 주차장입구, 마을회관, 당터 입구 등에 세웠다.
유지지대는 ‘우지기’, ‘유지기’등으로 부르며, 긴 소나무 혹은 대나무에 빗자루와 방망이, 망태, 가마니, 짚더미, 바람개비, 축원문 등을 매달아서 대문에 세우는 것이다. 원래는 각각의 집에서 만들어 세우던 전통이 있었으나 점차 약화되었다가, 뒤풀이 행사가 강화되면서 마을 노인들과 청년들이 힘을 합쳐 만들게 되었다.
당산제 다음날인 15일 아침에는 마당밟이를 한다. 이것을 ‘걸궁한다’, ‘당 울린다’라고 하는데, 걸궁굿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당산터를 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당을 먼저 울리고 난 다음, 차례대로 각 호를 방문하면서 마당밟이를 한다.
마당밟이가 다 끝나면 다시 당산터에 가서 울리고 모든 당제 절차를 끝마치게 된다. 당할머니가 마을의 수호신이기 때문에 걸궁을 시작한다고 고하고 끝낸다고 고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후 동제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동네 회의를 한다. 마을의 품삯과 인건비 등을 이날 결정하며 동네의 각종 납부금과 등급 등을 결정한다. 이 마을은 대개 6등급에서 7등급으로 호를 나누고 소위 마을경비 등을 ‘날파’하게 된다. 제주 댁과 당산목, 그리고 당집에 감았던 금줄은 이날 모든 절차가 끝나면 태운다.
올해는 이외에도 연날리기와 ‘남한산성도척이야’ 놀이, 용줄다리기, 망월행사, 답교놀이, 쥐불놀이 등을 했다.
[금기]
제물 준비를 하는데 크게 금기하는 것은 없으나 가격을 깎거나 값을 흥정하지 않는다.
정월 대보름 이전에 유사(초상이나 출산)가 있을 경우 2월 초하룻날(하루달)로 제일을 옮기기도 했으나, 근래 들어 뒤풀이를 크게 벌이면서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옷차림]
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흰옷을 입고, 제관과 집례는 따로 마련된 의례복을 입는다.
[축문]
당산제에서 ‘단잔’을 올리기 전에 읽었던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維 歲次乙酉丁月甲子朔十五日戊庚 珍島郡義新面斜川里
住民代表 狀宮 梁興要 敢昭告于
乾坤定位 有民有神
民在於地 神在於天
神德至矣 人賴以生
天惠地老 陰陽化生
神之無祠 爲屈爲疾
家之戶之 大設屈祭 尙
饗
[제비]
제비는 원래 ‘거러지 편정한다’, 혹은 ‘별신제 편정한다’, ‘날파한다’라고 해서, 두당 할당액을 각출한다. 다만 이것을 진도 내의 인근 마을인 덕병리처럼 ‘인구전’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또 쌀이나 보리 등의 곡식으로 갹출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근래 들어 모두 돈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두당 할당액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식구가 많은 경우에는 그 수만큼의 할당액을 내야 한다. 여기서 교회를 다니거나 절에 다니는 등 특수한 종교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편정’한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
제비를 갹출하는 기간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근래 들어, 이벤트 형식의 뒤풀이가 사상마을 당제의 중심역할로 변화되면서 행정당국의 지원을 받기도 하고, 또 유력자들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올해는 지원금과 기부금으로 제비와 뒤풀이 예산을 충당하였다.
[현황]
사상마을 동제는 진도 지역 내의 대부분의 당산제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으며, 이튿날의 뒤풀이 행사가 관광객들이 대거 참여할 만큼 확대되어 연행되고 있다. 이는 문화변동의 측면에서 크게 주목해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