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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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撤 |
영어음역 | Yu Cheol |
이칭/별칭 | 방숙,취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방숙(方叔), 호는 취옹(醉翁). 유영(兪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대의(兪大儀)이고, 아버지는 예조참의 통훈대부(通訓大夫) 유성증(兪省曾)이며, 어머니는 구준(具濬)의 딸이다. 아내는 풍천 임효달(任孝達)의 딸이다. 형으로 유황(兪榥)이 있다.
[생애]
1606년(선조 39)에 태어났다. 문과 급제 후 검열, 사간, 경기도 관찰사, 대사헌,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1671년(현종 12)에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1627년(인조 5) 생원이 되었고, 163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을 거쳐 사간으로 재직 중 “명나라를 피하고 청나라에 사대의 예를 닦는 것이 마땅하다.”고 건의하고 이를 시행하게 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 죽음을 당한 오달제(吳達濟)·윤집(尹集)·홍익한(洪翼漢) 등 삼학사의 가족들에게 은휼(恩恤)이 없음을 논술하여 가납을 받았고, 또 북방편의(北方便宜) 7사를 축조, 진술하여 모두 시행하게 하였다.
1652년(효종 3)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다. 1655년 대사간으로 있을 때에, 어전에서 승지 유도삼(柳道三)이 인평대군(麟坪大君)에게 신(臣)이라 칭한 것은 아무 뜻 없는 망발이나, 사사로이 대군을 만나는 것은 국법에 어긋난다며 파직을 청하였다가 효종의 노여움을 사서 진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러나 윤집·권시(權諰) 등 여러 대신들의 힘으로 한 달 만에 방환(放還)되었다. 현종 초에 다시 복관되어 대사헌을 거쳐 예조참판을 지내고 1671년에 65세로 죽었다.
[저술]
저서로는 『취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