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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150
한자 李匡師
영어음역 Yi Gwangsa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화가|문인|양명학자
아버지 이진검(李眞儉)
성별
생년 1705년연표보기
몰년 1777년연표보기
본관 전주(全州)
도보(道甫)
원교(圓嶠)|수북(壽北)

[정의]

진도에 유배되었던 조선 후기의 문인, 서화가.

[가계]

본관은 전주. 자는 도보(道甫), 호는 원교(園嶠) 또는 수북(壽北). 아버지는 예조판서를 지낸 전주이씨 이진검(李眞儉)이다.

[생애]

이광사는 조선 후기의 명필로서 영조의 등극과 더불어 소론이 실각함에 따라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큰아버지인 이진유(李眞儒)[1669~1730]가 1755년(영조 31)에 나주벽서사건(羅州壁書事件)으로 처벌될 때 이에 연루되어 함경북도 회령(會寧)으로 유배되었다가 진도로 옮겨졌다. 다시 전라남도 강진군 신지진에 속한 약산도로 유배되었고, 1777년에 약산도에서 죽었다고도 하나 일부 기록에는 진도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활동사항]

윤순(尹淳)[1680~1741]에게서 글씨를 배워 진서(眞書)·초서(草書)·전서(篆書)·예서(隸書)에 모두 능하였다. 원교체(圓嶠體)라는 특유한 필체를 이룩하여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하고 집대성하였다.

[학문과 사상]

이광사정제두(鄭齊斗)에게서 양명학을 배워 아들 이영익(李令翊)에게 전수한 강화학파(江華學派)의 한 사람이다. 또한 강화학의 정신을 문학과 논문으로 표출한 문학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하다.

[저술]

저서로는『동국악부(東國樂府)』외에 서예의 이론을 체계화시킨『원교집선(圓嶠集選)』과 『원교서결(圓嶠書訣)』 등이 있다.

[작품]

서예 작품으로는「영의정이경석표(領議政李景奭表)」, 「우의정정우량지(右議政鄭羽良誌)」, 「행서4언시(行書四言詩)」 등이 있다.

그림은 산수와 인물, 그리고 초충(草蟲)을 특히 잘 그렸는데, 산수는 새롭게 유입된 오파(吳派)의 남종영법(南宗怜法)을 토대로 소박하면서도 꾸밈없는 문인 취향의 화풍을 보였고 인물에서는 남송원체화풍(南宋院體畵風)의 고식(古式)을 따랐다. 대표작으로는 1746년(영조 22) 오대(五代)의 인물화가 왕제한(王齊翰)을 그렸다는「고승간화도(高僧看畵圖)」외에「산수도(山水圖)」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서예 중흥에 크게 공헌하였고 후진들을 위해 남긴 이광사의 저술과 작품들은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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