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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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文翼 |
영어음역 | Jeong Muni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정호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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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생년 | 1571년 |
몰년 | 1639년 |
본관 | 초계 |
호 | 송죽당(松竹堂) |
대표관직 | 충청도관찰사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생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위도(衛道), 호는 송죽당(松竹堂). 1606년(선조 39)에 진사가 되고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사간원정언·이조좌랑을 거쳐 홍문관 교리가 되었다. 1612년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몰아냈던 대북파의 영수 이이첨으로부터 박승종(朴承宗)과 유희분(柳希奮)의 무리라 하여 미움을 받았다.
1616년(광해 8)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한찬남(韓纘南)의 상변사건(上變事件, 해주옥사)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기까지 7년 동안 진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 이괄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웠으며, 1628년 회답사(回答使)로 심양(瀋陽)에 다녀오고 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저술]
문집인『송죽당집』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