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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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維嶽 |
영어음역 | Jeong Yua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조선후기 진도로 유배된 문신.
[가계]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길보(吉甫), 호는 구계(癯溪), 동촌(東村)이다. 정지겸(鄭之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환(鄭晥)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정뇌경(鄭雷卿)이다. 아내는 전주 사람 이시해(李時楷)의 딸이고, 어머니는 윤상형(尹商衡)의 딸이다. 아들로 정사효(鄭思孝), 손자로 정도형(鄭道亨)이 있다.
[생애]
1632년(인조 10)에 태어났다. 문과 급제 후 승지, 공조참판, 도승지, 경기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1701년(숙종 27)에 69세로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1652년(효종 3) 진사가 되고,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5년(숙종 1) 승지로 있을 때, 환관(宦官)이 인사(人事)와 상벌(賞罰) 등에 간여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왕에게 간언하다가 파직되었으나, 영의정 허적(許積)의 상소로 다시 기용되어 북한산성을 축조할 때 도청(都廳)을 지냈다.
그 뒤 좌승지·공조참판·도승지를 역임하다가, 1680년 남인 일파가 대거 실각하게 된 경신대출척으로 인해 변경에 안치되었다. 1685년 죄가 풀려 귀향하게 되었으며, 1689년 기사환국으로 경기도 관찰사에 등용,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다시 진도에 안치되었다가 1697년 귀향하였고, 1699년 사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