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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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漂着 |
영어음역 | pyochak |
영어의미역 | drif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바다에서 표류하여 어떤 곳에 닿는 것.
[개설]
여기서의 표착은 외국인이 국내에 표류된 경우를 일컫는다. 외국인의 국내 표착 신고와 관리는 어느 때나 연안 고을과 수군의 주요 임무였다. 특히 진도 해역은 중국~일본 간 해로 상 중간 지점에 있어 비교적 표착 기록이 많다. 그 처리를 잘못해 진도군수가 징계를 받은 일도 있었다.
진도에 표착한 외국인은 주로 중국인, 일본인, 유구인 등이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중에 진도에 표착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배가 파선되어 표착하는 경우에는 배를 수리해서 보냈고, 해로로 보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육로를 통해 본국으로 송환하기도 하였다.
[관련기록]
1588년(선조 22) 7월 22일에는 유구국(琉球國) 상인 30여 명이 진도에 표착해 중국 통신사 편으로 보냈다. 1644년(인조 22) 8월 8일에는 중국 광동성 광주부 사람 이국침(李國琛) 등이 일본 나가사끼로 장사를 가다가 진도 남도포에 표착해 대마도로 보냈다. 동년 1644년 8월 22일에는 황당선(荒唐船)이 진도에 표착해 대마도로 압송되었다. 1686년(숙종 30) 10월 16일에는 중국 복건성 대만 지역 중국인 80여 명이 진도에 표착하였고, 식량을 주어 일본으로 보냈다. 1704년(숙종 30) 7월 25일에는 중국 장주(獐州) 등 상인 113명이 일본으로부터 중국으로 가다가 남도포 앞바다에서 파선하였고, 동년 10월 16일 육로로 중국으로 보내주었다. 이때 일을 잘못 처리한 탓으로 우수사 신찬(申璨) 등이 파면되는 등 뒤처리로 소동이 났다.
1741년(영조 17) 7월 10일에는 중국 소주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다 피항하였다. 1777년(정조 원년) 10월 2일에는 중국 영해현을 떠난 장주 사람 조영례(趙永禮) 등 7명이 표착했다. 같은 날에 중국 복건성 상선이 24명을 싣고 조도면 눌옥도에 표착하여 배를 수리해 보냈다. 1777년(정조 원년) 11월 28일에는 중국 소주 상인 21명이 표류하여 배를 손질해 이듬해 3월에 떠났다. 1801년(순조 원년) 2월에는 중국 소주부 상선 6척이 무더기로 피항해왔다. 1827년(순조 27) 2월에는 중국 해등현 상선이 표착하여 수리해 보냈다. 1829년(순조 29) 12월 7일에는 중국 산동성 사람 2명이 표착하여 육로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