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7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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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繼叔-鄭光弼- |
영어음역 | Kim Gyesukgwa Jeong Gwangpil Iyagi |
영어의미역 | Tale of Kim Gyesuk and Jeong Gwangpi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전해지는 암행어사에 관한 전설.
[개설]
조선 중기 영의정을 역임하기도 했던 정광필(鄭光弼)에 관한 이야기로, 진도군수 김계숙의 비행을 현명하게 다스려 모두가 그 지혜로움과 아량에 감복하였다는 내용이다. 정광필은 정난종(鄭蘭宗)의 아들로, 1492년 문과에 금제해 옥당에 들어갔다. 부제학, 이조참의를 지낼 때 연산군에 항소하다가 1504년 아산으로 귀양을 갔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대사헌, 우·좌의정을 역임하고 1516년 영의정이 되었다. 그후 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 때 파직되고 1537년 김해에 귀양 갔다가 풀려나기도 하였다.
[내용]
김계숙은 1492년 진도군수에 부임했는데, 무인 출신이어서 그랬는지 성질이 사납고 포악하여 군민들을 많이 괴롭혔다. 또한 탐관오리들이 그러하듯 2년 여의 재임기간 내내 백성들의 피땀 어린 재산을 많이 축냈다고 한다. 자연 백성들의 원망이 극에 달하였다. 그즈음 정광필이 암행어사가 되어 벽파진(碧波津)에 내려왔다.
정광필은 곧 김계숙의 비행을 눈치채고는, 일부러 주막에 머물면서 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아하니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으므로 즉시 읍내 관아에 이 사실을 알렸다. 군수는 곧 암행어사가 분명하다고 판단하고는, 밤을 새워 어사출두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느지막하게 읍에 들어온 정광필은, 어사출두는 하지 않고 천연스럽게 “너 이 숟가락으로 밥 떠먹듯이 얼마나 많이 백성들의 피땀을 불법으로 빨아먹었느냐?” 하고는, 단지 백동수저 몇 개를 압수하여 가지고 표연히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김계숙은 군수직에서 파직되고 말았다.
나중에 사람들이 정광필에게, 어찌하여 어사출두를 하여 정식으로 죄를 다스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군(郡)이 해중절도이고 군수가 무부(武夫)인지라 필시 법외(法外) 횡람(橫濫)한 처사가 많을 것이지만, 직접 관아에 들어가 정식 출도를 하고 엄밀한 수사를 가해 문서·장부 등을 압수하면 군수가 한사코 이를 모면하기 위하여 저항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치는 사람도 많았을 터이니, 차마 그런 꼴을 볼 수가 없어서 간접적으로 추궁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 듣는 이들이 모두 그 넉넉한 아량과 지혜로움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는 이러한 이야기가 민간에 구전되며 옛이야기로 오르내린 데에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들에 대한 백성들의 미움과 이를 징치하고자 하는 열망이 배어 있다. ‘김계숙과 정광필 이야기’를 통해 민중은 탐관오리들의 비참한 최후를 즐기면서도 동시에 나쁜 목민관을 징치하는 방법에서는 물리적 폭력보다 지혜로운 대처 능력을 선호하는데, 이로써 당시 사람들의 순박한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