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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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仕培 |
영어음역 | Park Saba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정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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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리 |
성별 | 남 |
생년 | 1912년 12월 3일 |
몰년 | 1962년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정의]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사배는 1912년 12월 3일 진도군 조도면 창리에서 박덕협(朴德俠)[조도면장]과 청주한씨(凊洲韓氏)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은 영양천씨(潁陽千氏)이며 아들 3형제가 있다. 1962년 향년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력]
1929년 전라남도 목포상업학교 2학년 재학 중에 퇴학당하였다.
[활동사항]
목포상업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사배는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동년 11월 16일 학우 이광우(李光雨) 집에서 동교생 박상준·임성춘·이재실 등과 함께 목포상업학교의 동맹 휴교와 항의 시위를 결의하였다.
이에 ‘2천만 피압박민중에 고함’이라는 격문 다수와 ‘피감금학생 즉시 탈환’, ‘총독부 폭압정치 절대 반대’, ‘피압박민족해방 만세’ 등의 깃발을 준비하였다. 1929년 11월 19일에 목포 전 시내를 돌며 격문을 배포하고 전선을 절단하며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30년 3월 2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및 출판법과 전신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묘소]
서울시 영등포구에 있는 천주교 공동묘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