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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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冑 |
영어음역 | Yi 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정호 |
[개념]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주지(胄之), 호는 망헌(忘軒). 좌의정 이원(李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이증(李增)이고, 아버지는 현감 이평(李評)이며, 처는 전주(全州) 이해(李偕)의 딸이고, 어머니는 허추(許樞)의 딸이다. 형으로 이윤(李胤)이 있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생애]
1468년(세조 14)에 태어났다. 문과 급제 후 검열, 정언 등 주로 삼사(三司)에서 활약하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처형당했다.
성품이 어질며 글을 잘하였고, 시에는 성당의 품격이 있었으며, 정언으로 있을 때에는 직언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활동사항]
1488년(성종 1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거쳐 정언(正言)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몰려 진도로 귀양을 갔다. 진도 금골산 해언사(海堰寺)에서 6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1504년 갑자사화 때, 예전에 궁궐 내에 대간청을 설치할 것을 청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김굉필(金宏弼) 등과 함께 사형당했다.
[저술]
유집으로 후손들이 소장한 78수의 유시들을 한데 모아 1571년(선조 4) 친구 최이재(崔貳宰)·장옥산(張玉山)과 후학 하중환(河中煥) 등이 편집한 것을 뒤에 방후손들이 간행, 편찬한『망헌문집(望軒文集)』이 있다.
진도에 있는 동안 금골산 해언사에서 유배자의 심정을 피력한「금골산록(金骨山錄)」이 『동문선』에 전하고,『동국여지지』와 『진도읍지』에도 수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도승지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원(忠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