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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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幹會晋州支會 |
영어의미역 | New Trunk Society, Jinju Branch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영기 |
성격 | 민족운동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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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연도/일시 | 1927년 10월 19일 |
관련인물 | 홍명희 |
[정의]
일제 강점기 진주 지역에 있었던 신간회 소속 진주 지회.
[개설]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공통의 적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었으므로, 두 진영이 협력하여 1927년 신간회(新幹會)를 조직하게 되었다. 1926년 순종의 장례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만세운동에 자극되어 민족유일당운동으로서 조직되었는데, 1927년 1월 19일 발기인대회에서 발표한 강령과 창립대회에서 채택된 강령은 첫째,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한다. 둘째,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한다. 셋째,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 등이었다. 명칭은 처음에 신한회(新韓會)로 정하였으나 일제당국과의 교섭단계에서 신간회로 변경하였으며, “고목에서 새순이 난다”는 뜻이라고 단체명 유래까지 정하게 되었다.
1927년 2월 15일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관 대강당에서 신간회 창립대회가 개최되었다. 2백50여 명의 회원과 1천여 명의 방청객이 모였는데, 임시의장에 신석우(申錫雨)가 선출되어 회의를 진행하였으며, 회장에 당시 조선일보 사장인 이상재(李商在), 부회장에는 소설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洪命熹)가 선출되었으며, 간사 선출은 권동진(權東鎭) 등 전형위원에게 위임했다.
[설립경위]
1927년 2월 15일 신간회 본부가 창립된 후 같은 해 10월 19일에 서울에서 내려온 홍명희 등에 의해 마산 및 하동지회와 함께 신간회 진주지회가 설립되었다.
[활동사항]
신간회 진주지회 설립 이후 봉양학교·광림학교 졸업생들과 진주공립농업학교 졸업생들이 신간회 진주지회를 이끌었으나 일본 경찰들의 철저한 감시 하에 가택수색, 체포, 구금을 수시로 당하였다. 때문에 웅변대회·축구대회·정구대회·토론회·연극회·강연회 등을 통해 결속을 다지고 회지 발간을 통해 새소식을 주고받았다. 신간회 진주지회는 회원들이 주도한 야학과 유치원 교육, 명사초청 강연회 등을 통해 문맹퇴치에 앞장섰으며, 노동공제회·노농회·농민회·농민조합 등을 조직해 노동자·농민들을 위한 정책에 앞장섰다.
[조직]
당시 신간회 진주지회의 회원수는 60여 명으로 밀양·대구의 130여 명의 절반 정도, 통영·김해의 70여 명보다 조금 적었지만, 함양·함안의 30여 명보다 많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