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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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弔菊文 |
영어의미역 | Elegy of Chrysanthemum; A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박기용 |
성격 | 운명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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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하진백 |
모티프 유형 | 신이한 변화를 나타내는 나무 유형의 전설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지역에서 전승되는 하진백(河鎭伯)[1741~1807]과 그가 아끼던 국화에 얽힌 설화.
[채록/수집상황]
1983년 진주시에서 편찬한 『내 고장의 전설』에 처음 수록되었다. 그 후 1994년 진주문화원에서 편찬한 『진주문화 16집』에 다시 수록되었다.
[내용]
하진백은 국화를 아주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의 호도 국담(菊潭)이라고 불렀다. 하진백은 국화를 집안 연못에 심어 두고 국화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벗들을 불러 시회(詩會)를 열고, 국화술을 빚어두었다가 벗과 두 아우와 함께 즐겼다.
하진백은 일찍이 나이 겨우 세 살에 글을 읽을 줄 알았고, 여섯 살 때는 시를 지을 줄 아는 문장가였다.
그래서 1790년 정조(正祖)[1752~1800]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다섯 차례나 임금에게 나아가 남다른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정조의 갑작스런 서거로 출사는 좌절되었고, 끝내 큰 뜻을 펴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오히려 자연에 뜻을 두고 국화를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다. 일찍이 진나라 도연명(陶淵明)[365~427]이 국화를 사랑하여 풍취를 남긴 이야기가 있으나, 하진백 역시 아우들과 국화를 사랑함이 그에 못지않아 세상 사람들은 하진백을 두고 도연명도 이루지 못한 형제의 국화 사랑을 이루었다고 일컬었다.
하진백이 고고한 학처럼 살다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해마다 구월이면 꽃망울을 터뜨려 향기를 사방으로 뿜던 국화가 하진백이 죽자 시들시들 죽어갔다.
사람들은 이런 기이한 현상을 보고 하공이 죽자 국화도 순절하여 시들어 죽었다며 이상하게 여겼다.
이를 본 아우 진중(鎭中)은 시들어 죽는 국화를 보자 슬픔이 가슴에 사무쳐 어쩔 줄을 몰랐다.
이 마음을 시로 지어 달래니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 죽음은 今日之死
그대가 좋은 대우를 받았음을 알기 때문이고 以君知遇之感
뒷날 태어나면 後日之生
내 그대를 형제의 정으로 대하리라 爲吾孔懷之情
이듬 해 국화는 다시 살아나 꽃을 피웠다.
[모티브 분석]
조국문 설화는 주인과 운명을 같이 했다가 살아났다는 운명담으로, ‘신이한 변화를 나타내는 식물’ 유형에 속하는 민담이다.
[의의와 평가]
실존 인물 하진백의 국화 사랑에 얽힌 이 이야기는 식물도 사람과의 정을 알아서 저버리지 않는다는 내용이며, 이전의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에서도 조사 되지 않은 설화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