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621 |
---|---|
한자 | 姜熙悅 |
영어음역 | Kang Huiyeol |
이칭/별칭 | 강희열(姜希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정은 |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생애]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부사 강우복(姜遇福)이다. 전라도 순천 출신의 무사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인 강희복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고 고경명(高敬命)을 따라 금산전투에 참전하였으나 패배하였다. 잠시 고향인 순천으로 돌아가, 다시 의병 200여 명을 모집하여 군표(軍標)를 ‘비(飛)’자로 삼고, 남원을 공격하였다.
1593년 6월 진주성을 왜군이 포위했다는 소식을 듣자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입성하여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황진(黃進) 등과 더불어 항전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지고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적진으로 돌진하여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상훈과 추모]
봉사(奉事)에 추증되었고, 진주의 충민사(忠愍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