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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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仁亨 |
영어음역 | Yi Inhyeong |
이칭/별칭 | 공부(公夫),매헌(梅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덕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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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이미(李美) |
어머니 | 강비호(姜匪虎)의 딸 진주강씨(晋州姜氏) |
성별 | 남 |
생년 | 1436년 |
몰년 | 1497년 |
본관 | 함안(咸安) |
자 | 공부(公夫) |
호 | 매헌(梅軒) |
추증 | 예조판서 |
제향 | 위계서원(葦溪書院)[경상남도 고성군] |
대표관직 | 대사간|전라도관찰사|대사헌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함안. 자는 공부(公夫), 호는 매헌(梅軒). 아버지는 대사성을 지낸 이미(李美)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로 강비호(姜匪虎)의 딸이다.
[생애]
1436년(세종 18) 태어나 15세부터 문명이 널리 알려졌으며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배웠다. 1455년(세조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젊은 나이에 출사하는 것은 교만한 성품을 기른다고 하면서 집에서 문을 닫고 독서하여 3년 뒤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교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부교리와 응교 등을 지냈다. 1473년 북평사에 임명되어서는 적의 침략에 대비가 소홀하였다는 이유로 직첩을 몰수당하기도 하였다.
1488년 사간을 지내고 김산군수로 나갔을 때 개령(開寧)에 요승(妖僧)이 있어 온갖 방법으로 혹세무민하자 아전을 시켜 요승을 잡아 처치하고 그 근거지를 불태워 민폐를 막았다. 1492년 종부시정이 되어서는 임금의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목멱산에 치제할 때 행향사(行香使)가 되었고, 1495년 대사간에 올랐다.
1496년 전라도관찰사를 지내고, 동지성균관사와 대사헌을 거쳐 이듬해 한성부의 좌·우윤을 지냈다. 1497년(연산군 3) 별세하였으나 이듬해 일어난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이라는 이유로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1506년(중종 1)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이어서 자손녹용(子孫錄用)의 은전을 받았다. 경상남도 고성의 위계서원에 제향되었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진주의 인물로 이름이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