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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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矗石樓中三壯士記實碑 |
영어음역 | Chokseongnu Jungsamjangsagisilbi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of Three Heroes on Chokseongnu Pavilion |
이칭/별칭 | 촉석삼장사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태남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 앞에 있는 임진왜란 삼장사(三壯士) 기념비.
[개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판서에 추증된 김성일(金誠一)[1538~1593]과 조종도(趙宗道)[1537~1597], 이조판서에 추증된 이로(李魯)[1544~1598]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건립경위]
삼장사에 대한 기록이 문헌마다 달라 국사편찬위원회의 유권해석과 경상남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1963년에 건립하였다. 여기에서의 삼장사는 김성일이 찬한 「촉석루중삼장사」라는 시 중의 삼장사를 말하며, 이는 『영조실록』에서 말하는 계사년 순의의 진주 삼절사(三絶士)와는 구별된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촉석루중삼장사기실비(矗石樓中三壯士記實碑)이며, 비문은 1960년 중재(重齋) 김황(金榥)[1896~1978]이 찬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조 임진년 5월에 문충공 학봉 김성일은 영남초유사로 진양성에 이르러 충의공 대소헌 조종도와 정의공 송암 이로와 함께 촉석루에 오르다. 때는 왜란으로 강토에 선지피 낭자하니 벼슬아치는 모두 달아나고 군사와 백성은 흩어졌다. 성안이 텅 비어 쓸쓸하고 강물만 예전대로 아득히 흐르는데 멀리 눈을 들어 조국의 산하를 바라보니 오직 슬프고 분함에 마음 저리었다. … 분연히 맹세하여 술 한잔 높이 들고 시 한 수를 읊었다. ‘촉석루 삼장사는 잔을 들고 굽어볼제 뜻 있어 흐르는 물 웃는 가슴 이어지다. 세월도 강물이거니 넋은길이 남으리라.(宣祖壬辰五月 鶴峯金文忠公誠一 以嶺南招諭使 來到晋州 與大笑軒趙忠毅公宗道 松巖李貞義公魯 同上矗石樓 時倭亂方棘 官守皆逃 軍民不集 城中寥寥 江水茫茫 擧目山河 不勝悲怨 … 遂把酒吟 詩曰 矗石樓中三壯士 一盃笑指長江水 長江之水流滔滔 波不渴兮魂不死)”
[현황]
‘촉석삼장사비’라고 불리며, 진주성 촉석루 앞 광장에 서 있다. 진주성 관리가 잘되어 이 비도 깨끗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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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1 |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 비의 제목은 ‘矗石樓中三壯士記實碑(촉석루중삼장사기실비)이며, 비문은 1960년 중재(重齋) 김황(金榥)[1896~1978]이 찬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宣祖壬辰五月 鶴峯金文忠公誠一 以嶺南招諭使 來到晋州 與大笑軒趙忠毅公宗道 松巖李貞義公魯 同上矗石樓 時倭亂方棘 官守皆逃 軍民不集 城中寥寥 江水茫茫 擧目山河 不勝悲怨 … 遂把酒吟 詩曰 矗石樓中三壯士 一盃笑指長江水 長江之水流滔滔 波不渴兮魂不死…(선조임진오월 학봉김문충공성일 이영남초유사 래도진주 여대소헌조충의공 종도 송암이정의공노 동상촉석루 시왜란방극 관수개도 군민부집 성중요요 강수망망 거목산하 불승비원 조이이공 욕집수투강 학봉이위도사무익 사역비만 오비외사자 당소부자 유여차수 수파주음 시왈 촉석루중삼장사 일배소지장강수 장강지수유도도 파부갈혜혼불사: 선조 임진년 5월에 문충공 학봉 김성일은 영남초유사로 진양성에 이르러 충의공 대소헌 조종도와 정의공 송암 이로와 함께 촉석루에 오르다. 때는 왜란으로 강토에 선지피 낭자하니 벼슬아치는 모두 달아나고 군사와 백성은 흩어졌다. 성안이 텅 비어 쓸쓸하고 강물만 예전대로 아득히 흐르는데 멀리 눈을 들어 조국의 산하를 바라보니 오직 슬프고 분함에 마음 저리었다. … 분연히 맹세하여 술 한잔 높이 들고 시 한 수를 읊었다. ‘촉석루 삼장사는 잔을 들고 굽어볼제 뜻 있어 흐르는 물 웃는 가슴 이어지다. 세월도 강물이거니 넋은길이 남으리라.’)” ->비의 제목은 ‘촉석루중삼장사기실비(矗石樓中三壯士記實碑)이며, 비문은 1960년 중재(重齋) 김황(金榥)[1896~1978]이 찬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조 임진년 5월에 문충공 학봉 김성일은 영남초유사로 진양성에 이르러 충의공 대소헌 조종도와 정의공 송암 이로와 함께 촉석루에 오르다. 때는 왜란으로 강토에 선지피 낭자하니 벼슬아치는 모두 달아나고 군사와 백성은 흩어졌다. 성안이 텅 비어 쓸쓸하고 강물만 예전대로 아득히 흐르는데 멀리 눈을 들어 조국의 산하를 바라보니 오직 슬프고 분함에 마음 저리었다. … 분연히 맹세하여 술 한 잔 높이 들고 시 한 수를 읊었다. ‘촉석루 삼장사는 잔을 들고 굽어볼 제 뜻있어 흐르는 물 웃는 가슴 이어지다. 세월도 강물이거니 넋은 길이 남으리라(宣祖壬辰五月 鶴峯金文忠公誠一 以嶺南招諭使 來到晋州 與大笑軒趙忠毅公宗道 松巖李貞義公魯 同上矗石樓 時倭亂方棘 官守皆逃 軍民不集 城中寥寥 江水茫茫 擧目山河 不勝悲怨 … 遂把酒吟 詩曰 矗石樓中三壯士 一盃笑指長江水 長江之水流滔滔 波不渴兮魂不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