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4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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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鳳運 |
영어음역 | Ha Bongun |
이칭/별칭 | 치서(致瑞),죽헌(竹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판도 |
성격 | 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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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하우현(河友賢) |
어머니 | 분성이씨 이익의 딸 |
아내 | 은율임씨 임박(林璞)의 딸 |
출신지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
성별 | 남 |
생년 | 1790년 |
몰년 | 1843년 |
본관 | 진주(晋州) |
자 | 치서(致瑞) |
호 | 죽헌(竹軒) |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주.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예암(預庵) 하우현(河友賢)이며 어머니는 분성이씨(盆城李氏) 이익의 딸이다. 부인은 은율임씨 임박(林璞)의 딸이다.
[생애]
1790년(정조 14)에 출생하여 10세 때 부친을 여의고 종조부인 함청헌(涵淸軒) 하이태(河以泰)에게 공부를 배웠다. 15세 때 어머니마저 별세하자 상례를 정성으로 치러 마을의 칭찬이 자자했다. 이후 혼자서 집안을 이끌어가며 바른 행실로 지역의 선비들로부터 명망을 얻었으며, 진주 연계재(蓮桂齋) 중창, 진주향안(晋州鄕案) 교감, 겸재 하홍도(河弘度) 문집 간행, 각재 하항(河沆) 비석 건립, 진주 낙수암(落水庵) 중수 등의 일을 주도적으로 진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남명 조식을 모신 덕천서원 원장의 직책도 맡았다. 1830년(순조 30) 안동을 방문하여 학봉 김성일과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의 학덕을 기리기도 했다. 1843년(헌종 9) 별세하였다.
[묘소]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