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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 항쟁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649
한자 五一八民主抗爭運動
이칭/별칭 5․18 광주 민주 항쟁,5․18 민중 항쟁,5․18 광주 민중 항쟁,5․18 광주 민주화 운동,광주 민중 항쟁,5․18 민주화 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 운동
관련인물/단체 인하 대학교
발생|시작 시기/일시 1980년 5월 7일 - 인하 대학교 학생들이 시국 선언문을 발표하며 시가행진 전개
전개 시기/일시 1980년 5월 8일 - 인하 대학교 학생 1만여 명이 교내 시위 전개
전개 시기/일시 1980년 5월 9일 - 인하 대학교 학생들이 인하 대학교 구정문과 후문 등지에서 시위 전개
전개 시기/일시 1980년 5월 12일 - 인하 대학교 교수 130여 명이 대학생들의 시위를 지지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전체 교수 협의회 결성
발생|시작 장소 인하 대학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로 100[용현동 253]지도보기

[정의]

1980년 5월 18일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시작되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도 대학생 등이 참여하게 된 민주화 운동.

[역사적 배경]

1979년 10월 26일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태’가 발생하였다. 10․26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소장이 12․12 사건을 일으키며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후 민주화 운동 세력과 정적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1980년 5월 초부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계엄 철폐와 민주화 추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인천 지역에서는 인하 대학교 학생들이 1980년 5월 7일 이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계엄령 철폐”, “언론 자유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전개하였다.

[경과]

1980년 5월 7일, 인하 대학교 학생들이 대운동장에 모여 시국 선언문을 발표하며 5․18 민주 항쟁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발표된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은 요구가 담겨 있었다.

1. 정부 주도 개헌을 즉각 중지하고 명확한 정치 일정을 밝혀라.

2. 명분 없는 계엄령은 조속히 해제하고 군부는 군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라.

3. 유신 잔재 세력은 즉각 물러가고 민주화 과정에 차질이 없게 하라.

4. 노동 3권과 농민의 생활권을 보장하라.

5. 해직 근로자 및 미 석방 정치범을 즉각 석방하고 미 복권자는 복권시켜라.

6. 언론에 대한 검열을 중지하고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라.

7. 학원의 자율화와 민주화는 학생에게 일임하고 외부 세력은 이에 간섭 말라.

인하 대학교 학생들은 시국 선언문 발표 후 약 1천여 명이 “계엄령 철폐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인하 대학교 정문을 막고 있는 경찰을 피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소재 인하 대학교 사범 대학 부속 고등학교 정문을 통해 학교를 빠져나간 후 시가행진을 전개하였다. 인하 대학교 학생들의 시가행진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독쟁이 고개를 거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소재했던 인천 교육 대학 앞까지 계속됐으며 다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사택 입구 사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인하 대학교 이재철 총장의 설득으로 인하 대학교로 돌아갔다. 그중 일부 학생들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소재 인천 공설 운동장으로 진출, 시위를 계속 전개하였으며 이곳에서 경찰과 무력 충돌 후 인천광역시 중구 동인천동 동인천역 앞까지 진출해 시위를 이어갔다.

1980년 5월 8일에 인하 대학교 학생 1만여 명이 모여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비상 계엄군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발표한 후 교내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이날 인하 대학교 후문에 계엄군을 실은 3대의 트럭이 주둔했다가 철수하기도 하였다. 1980년 5월 9일에도 인하 대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인하 대학교 구정문과 후문 등에서 전개되었다.

1980년 5월 12일, 인하 대학교 교수 130여 명이 참석해 전체 교수 회의를 열고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7개 항목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체 교수 협의회를 결성하였다.

[결과]

1995년 12월 19일에 5․18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1997년 사법부가 12․12 사건은 군사 반란이며 5․18 민주 항쟁 운동에 대한 군부의 행위는 내란 및 내란 목적의 살인 행위였다는 판결을 내렸다.

[의의와 평가]

6․25 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민주화 운동으로 1970년대를 거치며 전개되어 온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민중 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이루었다.

[참고문헌]
  • 『인하 대학 신문』 (1980. 5. 12)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5․18 기념 재단(http://www.518.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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