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6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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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正烈頌德碑 |
이칭/별칭 | 김정렬 선정 기념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상열 |
성격 | 선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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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김정렬 |
재질 | 오석 |
크기 | 355㎝[높이], 76㎝[너비], 46㎝[두께] |
소유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 |
관리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 |
건립 시기/일시 | 1996년 6월 10일 - 김정렬 송덕비 건립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907년 10월 29일 - 김정렬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974년 2월 19일 - 김정렬 사망 |
현 소재지 | 김정렬 송덕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8-7 수봉 공원 내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수봉 공원에 소재하고 있는 인천의 초대 민선 시장 김정렬(金正烈)의 선정(善政)을 기리는 기념비(紀念碑).
[개설]
인천의 초대 직선제 민선 시장으로 당선되었던 김정렬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 성격의 기념비로 1996년 5월 5일 인천광역시 의정회(仁川廣域市議政會)와 지방 행정 동우회 인천광역시 지회 등이 공동 발의하여 건립한 것이다.
김정렬은 1907년 인천광역시 남동구 소래(蘇萊)에서 태어나 1933년 보성 전문 학교(普成專門學校) 법과를 졸업했다. 1945년 광복 이후 서울 지방 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인천 지원(仁川支院) 판사를 역임했고, 1950년에는 인천 지원장과 부장 판사로 승진하였다.
김정렬은 법관으로 재직 중이었던 1954년 인천시 의회 간접 선거에서 제2대 인천 시장에 당선되었고 1958년 첫 직선제 시장 선거에서 국내 유일의 무투표 당선 시장이 되었다.
김정렬은 4·19 의거 후, 제2공화국 심계원(瀋計院)[예전에 국가의 수입과 지출의 결산을 검사하던 독립적 지위의 중앙 행정 기관. 감사원으로 통합되었다.] 차장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1967년 인천에서 민정당(民政黨)으로 출마하여 제7대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74년 67세로 작고할 때까지 변호사로서 활동하였다.
[건립 경위]
김정렬 송덕비는 1996년 5월 5일 인천광역시 의정회와 지방 행정 동우회 인천광역시 지회 및 몇몇 개인이 공동으로 발의하여 건립하였다. 선정 기념비 뒤편에 세운 건립문에는 “地方自治는 그 地域의 特殊性을 地盤으로 住民의 意思와 福利를 최우선으로 하는 地域社會 問題를 地域住民이 民主的으로 解決할 수 있는 自律性이 최대한으로 保藏되어야 하며 이것이 民主主義의 당연한 歸結이다. …… 地域自治 發展에 至大한 貢獻을 한 바 있는 초대 直選制 民選市長으로 無投票 當選되었던 姑 金正烈先生이 남긴 많은 業績을 追慕하면서 …… 이 紀念碑를 세운다. …….”라고 새겨져 있다.
[위치]
김정렬 송덕비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 4동 수봉 공원 내에 있다.
[형태]
김정렬 송덕비는 높이 75㎝의 귀부(龜趺) 위에 높이 205㎝, 너비 76㎝, 두께 46㎝의 오석으로 제작된 비신(碑身)이 놓였으며, 그 위에 높이 75㎝의 이수(螭首)로 장식하였다.
[금석문]
전면에는 “仁川市長 姑 金正烈善政紀念碑”라 새겨져 있다.
후면에는 “黙軒 金正烈 선생은 깨끗하고 푸른 정신으로 易地思之를 신조로 삼아 오로지 시민을 위한 시정 수행에 헌신하여 올바른 민주 행정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시다. …… 선생은 민심을 모아 시 행정에 반영하여 더불어 함께 사는 시정을 창출하기에 전념하였으며 지방자치 단체장으로서는 유일하게 三․一五 부정선거 획책에 정면으로 맞서 항거함으로서 행정 제일선에서 민주 질서를 지키는데 솔선수범 하였고 시민으로부터 청백리로 추앙 받아 四․一九 후 심계원 차장으로 발탁되시기도 하였다. …… 우리는 선생의 밝고 맑은 선비정신으로 높여진 그 고매한 품위와 공명정대하고 청렴결백한 주권재민의 민주정신을 기리며 이 송덕비를 세우다. …….”라고 새겨 있다.
[현황]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이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초대 직선제 민선 시장을 기리는 선정 기념비로서 광복 후 인천광역시 시장 중 유일한 선정 기념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