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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장의 사과를 받은 여섯 살짜리 제운 선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760
한자 尊長-謝過-霽雲先生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인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인물 전설
주요등장인물 제운 이세주
모티프유형 인덕이 높고 효행이 지극한 선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2년 - 「존장의 사과를 받은 여섯 살짜리 제운 선생」 『눈물의 한국학』에 수록
관련 지명 제운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전하는 제운 이세주의 일화를 설화화한 이야기.

[개설]

숙종(肅宗) 때의 교육자이며 효행이 지극한 인물로서, 제운(霽雲) 이세주(李世胄)[1626~1710]의 일생을 통해 귀감이 될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인천광역시 역사 자료관에서 펴낸 『옛날 옛적에 인천은』과 이규태의 『눈물의 한국학』에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전한다.

[내용]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은 예로부터 제운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조선 숙종 때 교육자, 효행자로서 높이 칭송을 받는 이세주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태어났는데, 이세주의 아호가 제운이었기 때문이다. 이세주는 부평 이씨(富平李氏)지만 그의 명성이 너무 유명해서 아호가 곧 본관처럼 쓰일 정도였다. 심지어 이 마을의 부평 이씨를 제운 이씨라고까지 불렀다.이세주가 겨우 여섯 살이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외삼촌의 웃어른이 이세주가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 이진재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 그러자 이세주는 울면서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이세주는 집안의 어른에게 존장이 자신의 부친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려 몸 둘 바를 몰랐다고 하면서 다시 존장에게 가지 않았다. 당시는 웃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이 예법이었다. 그것은 특히 유학을 숭상하는 선비의 집안에서는 더욱 엄격히 지켜야 할 규칙이었다. 불과 여섯 살짜리 소년 이세주가 그것을 지킨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외삼촌의 웃어른이 실수를 뉘우치고 어린 세주에게 찾아와 사과하면서, 훗날 반드시 대성해서 이 나라의 큰 선비가 되라고 격려했다.

이세주는 유년 시절부터 언제나 즐겁게 웃고 재롱을 부리면서 부모의 마음을 언짢게 하는 일이 없었다. 아우나 누이에게 또한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혹 어쩌다 병이라도 앓게 되면 이만저만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번은 어머니가 학질을 앓았다. 어머니를 진맥한 한의는 매일같이 참새를 대여섯 마리씩 먹어야 낳는다고 하였다. 어린 세주는 그날부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마다하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참새를 잡아 어머니가 잡숫게 했다는 것이다.

이세주의 효성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얼마나 극진했던지 어머니가 거처하시는 방은 반드시 자신이 불을 지펴 따듯하게 했고 비록 가세는 가난했으나 부모 봉양에 조금도 빠진 것이 없도록 했다. 겨울에는 어머니의 잠옷을 미리 입어 따듯하게 한 뒤 입으시도록 했고, 여름에는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부채질을 해 드렸다. 어머니가 84세의 고령으로 병세가 위중해지자 밤에도 허리띠를 풀지 않고 간호하며 심지어 어머니의 변을 맛보아 병세를 판별하면서까지 간호하여 세상 사람들의 흠모와 감탄을 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는 또 훗날 늙어서 자식도 없이 일찍 과부가 된 누이동생을 위하여 자기 집 옆에 거처를 마련해 주고 직접 돌보는 한편 양자를 들여 친자식처럼 아끼고 가르치기도 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러한 제운 선생의 일생을 효행과 교육의 표본으로 삼았다

[모티프 분석]

「존장의 사과를 받은 여섯 살짜리 제운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숭상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원시적인 사고방식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목숨이나 피 같은 생명의 일부로 여겼다. 그래서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본명이나 실명을 부르지 않기 위해서 아명(兒名)이 있고, 자(字)가 있으며 불특정수의 호(號)가 있다. ‘애아버지’, ‘애어머니’ 하는 식으로 아이 본위로 호칭하는 것도 실명을 기피하기 위한 풍습이다. 그런데 이 설화에서 외삼촌의 존장 되는 어른이 이세주가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 존장의 행동이 예법에 벗어난 것임을 어린 이세주의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제운 선생은 어려서부터 비범한 아이였기에 훗날 큰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 병석에 누운 어머니에게 매일 참새를 잡아드리고, 고령으로 위독한 어머니의 변을 맛보며 간호하며, 늙어서 자식도 없이 고독하게 사는 누이를 이웃에서 돌보았다 것은 제운 선생이 효행과 교육의 표본으로 삼을 만한 인물임을 보여 준다. 제운 선생의 행동은 후대의 귀감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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