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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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之岱 |
영어공식명칭 | Kim Ji-dae |
이칭/별칭 | 중룡,영헌공(英憲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정영현 |
출생 시기/일시 | 1190년 - 김지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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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218년 - 김지대 과거 장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266년 - 김지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04년 - 김지대 밀양 남계서원에 배향 |
출생지 | 청도 - 경상북도 청도군 |
묘소|단소 | 김지대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상리 산95 |
사당|배향지 | 남계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3길 43-16[두곡리 366] |
사당|배향지 | 염수당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한재로 470-80[상리 271] |
성격 | 문관 |
성별 | 남성 |
본관 | 청도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남계서원에 배향된 고려 후기의 문신.
[개설]
김지대(金之岱)[1190~1266]는 고려 무신 집권기에 해당하는 고종 때부터 원종 시기에 걸쳐 외직과 내직에서 활약하였다. 학문이 뛰어나고 올곧은 성격으로 무신 집권자들 앞에서도 강직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가계]
김지대의 본관은 청도(淸道)이며 아이 때 이름은 김중룡(金仲龍)이다. 고려시대 시중(侍中)을 역임한 김여흥(金餘興)의 셋째 아들이며, 청도김씨의 시조이다. 선계(先系)는 김알지(金閼智)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悅)의 7세손이다.
[활동 사항]
김지대는 1217년(고종 4)부터 몽골군이 쳐들어왔을 때 강동성 전투에 아버지 대신 참전하였고 이듬해 1218년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240년 무렵 전라도안찰사가 되었을 때 훗날 무신 집권자가 되는 최항(崔沆)이 만전(萬全)이라는 이름의 승려로 전라도 진도의 절에 주지로 있었다. 만전이 거느린 승도들이 제멋대로 굴자 김지대는 만전의 승도들 중 하나인 통지(通知)를 물에 빠뜨려 죽였다. 최항은 이 일로 김지대에게 유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김지대의 성품이 청렴하고 허물이 없었으므로 해치지 못하였다.
김지대는 1258년(고종 45) 5월 몽골의 군대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을 때 지병마사 홍희(洪熙)를 대신하여 첨서추밀원사가 되어 서북 40여 성을 안정시키고, 이 공으로 추밀원부사·동지추밀원사를 거쳐 정당문학 이부상서로 승진하였다. 얼마 후 노령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여 수태부 중서시랑평장사로 승진한 후 관직에서 물러났다.
김지대는 질병으로 1266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
김지대의 묘소는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상리에 있으며, 인근에 재실인 염수당(念修堂)이 있다.
[상훈과 추모]
김지대는 사후에 영헌공(英憲公)으로 추증되었으며, 1704년(숙종 30) 밀양 남계서원(南溪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