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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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景邃 |
영어공식명칭 | Park Kyung-so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병련 |
출생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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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후사포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
성격 | 교육자 |
성별 | 남성 |
본관 | 밀성(密城)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학자이자 교육자.
[가계]
박경수(朴景邃)[?~?]의 본관은 밀성(密城)[밀양]이며, 행산(杏山) 박세균(朴世均)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박희생(朴希生),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동생은 박경인(朴景仁)과 박경의(朴景義)이다.
[활동 사항]
박경수는 밀양부 부서(府西)에서 태어났다. 밀양의 부서와 부북(府北)은 밀성박씨가 모여 사는 대표적인 집성촌이었다. 박경수는 부서 5.89㎞[15리] 되는 우령산(牛齡山)과 종남산(終南山) 자락에 쌍괴당(雙槐堂)을 짓고 살았는데,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해당한다.
박경수는 상당히 부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쌍괴당에 점필재 김종직의 손자인 박재(璞齋) 김뉴(金紐), 고령의 양죽당(養竹堂) 박정완(朴廷琬), 점필재의 증손자 김천서(金天瑞), 김천상(金天祥) 등 많은 명사들이 왕래하였다.
박경수는 거창향교의 교관, 영덕향교의 교관을 지냈다. 학문적으로는 밀양의 유종(儒宗)인 송계(松溪) 신계성(申季誠)과 박재 김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박정완과 더불어 북인으로 활동하다 인조반정 후에 그 자취가 거의 사라졌다.
고령의 부호 박정완은 송계 신계성의 외손녀의 남편인데, 아들 박광선(朴光先), 손자 박종주(朴宗胄), 증손자 박희집(朴禧集)이 반정과 광해군 복립 사건에 연루되어 형을 받았다. 박경수의 후손들도 함께 연루된 것으로 보이고, 지금은 동생 박경의의 후손들이 옛 전장(田莊)을 물려받아 거주한다. 김뉴가 박경수에게 준 시가 4편 남아 있고, 김뉴가 가장 가깝게 지낸 인물이라 하였음에도 밀양 지역에는 박경수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인조반정이 지방 세력의 성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중요한 함의를 시사하는 인물이다.
[상훈과 추모]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에 후손들이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낙거정사(樂居精舍)에 모여 박경수를 추모하는 향례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