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526
한자 孫肇瑞
영어공식명칭 Son Jo Seo
이칭/별칭 인보(引甫),면재(勉齋),격재(格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영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12년연표보기 - 손조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32년 - 손조서 사마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435년 - 손조서 식년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35년 - 손조서 예문관검열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51년 - 손조서 병조정랑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473년연표보기 - 손조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00년 - 손조서 이조참판양과제학 추증
출생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사당|배향지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79-4]
사당|배향지 혜산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산외1리길 17-18[다죽리 607]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안동
대표 관직|경력 병조정랑

[정의]

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학자.

[가계]

손조서(孫肇瑞)[1412~1473]의 본관은 안동(安東)[일직(一直)]이며, 자는 인보(引甫), 호는 면재(勉齋)·격재(格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손득수(孫得壽)이고, 할아버지는 손영유(孫永裕)이다.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청백리 손관(孫寬)이며, 어머니는 김흡(金翕)의 딸이다. 1412년 밀양 용평리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손조서는 학문과 시문의 대가로서 김종직(金宗直)과 친교가 있었으며, 김종직의 제자인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 등이 스승의 예로 섬겼다. 1432년(세종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435년(세종 17) 식년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1435년 예문관검열을 거쳐 집현전에 보직되었으며, 지봉산군사(知鳳山郡事)가 되었다. 1451년(문종 1)에 병조정랑을 지냈다.

손조서는 부모님을 모시고자 외직인 봉산군수(鳳山郡守)로 있을 때 단종이 왕위를 세조에게 물려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세상일과 연을 끊어 선왕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세조 초에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후손에게 새로운 직함을 받지 않을 것을 유명(遺命)으로 남겼다. 1800년 임금이 특명을 내려 충의탁절로 이조참판양과제학을 추증하였다.

[학문과 저술]

손조서의 문장은 박팽년(朴彭年), 김종직 등과 교유할 정도로 뛰어났다. 저서로 『격재집(格齋集)』 1권이 있다. 『격재집』은 1479년(성종 10)에 경상남도 밀양에서 간행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고, 후손 손상룡(孫相龍)이 부사(府使)로 있을 때 타고 남은 시와 부록 2권을 더하여 중간(重刊)하였다.

[상훈과 추모]

손조서는 대구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가 1971년 밀양의 혜산서원에 복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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