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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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光益 |
영어공식명칭 | Jo Gwangik |
이칭/별칭 | 가회(可晦),죽와(竹窩),취원당(聚遠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구진성 |
출생 시기/일시 | 1537년 - 조광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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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64년 - 조광익 문과 별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576년 - 조광익 문과 중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578년 5월 5일 - 조광익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34년 - 밀양 조광익 효자 정려각 중건 |
출생지 | 창원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지개리 |
거주|이주지 | 창원 - 경상남도 창원시 |
거주|이주지 | 오방리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 |
부임|활동지 | 한양 - 서울특별시 |
부임|활동지 | 평양 - 평양직할시 |
묘소|단소 | 밀양 오방리 강동구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 353-4 |
사당|배향지 | 밀양 조광익 효자 정려각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 63 |
사당|배향지 | 오봉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오발길 9-12[오방리 347] |
성격 | 학자|관료 |
성별 | 남 |
본관 | 창녕 |
대표 관직 | 형조좌랑|정랑|의금부도사|평안도도사 |
[정의]
조선 전기 밀양에 거주한 학자이자 관료.
[가계]
조광익(曺光益)[1537~1578]의 본관은 창녕이며, 자는 가회(可晦), 호는 죽와(竹窩)·취원당(聚遠堂)이다. 양평공(襄平公) 조익청(曺益淸)의 후손이며, 5대조 조경무(曺敬武)는 무과 출신으로 밀양의 세족인 손빈(孫贇)의 집안에 장가들었다.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3대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조할아버지 조말손(曺末孫)은 한림을 지냈고, 증조할아버지 정우당(淨友堂) 조치우(曺致虞)는 한림 및 대구부사를 지냈으며 청백리로 기록되었다. 할아버지 위재(韋齋) 조호연(曺孝淵)은 한림을 지냈고, 이황이 묘갈명을 썼다.
조광익의 아버지 노재(魯齋) 조윤신(曺允愼)은 창원 고암동(古巖洞)에 은거하였으며, 뒤에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어머니는 이조판서를 지낸 장말손(張末孫)의 손녀이자 장중우(張仲羽)의 딸인 인동장씨이다. 동생은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이다.
[활동 사항]
조광익은 1537년 창원(昌原) 익동(杙洞)에서 태어났으며, 창원에서 처향인 밀양 오방동으로 이주하였다.
1561년 25세 때 생원이 되었고, 1564년 문과 별시에 차석으로 합격하였고, 1576년 문과 중시에 장원급제하였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율곡 이이, 고봉 기대승, 한강 정구 등과 학문적 교류가 있었다. 형조좌랑·형조정랑 등으로 근무하였으며, 평안도 도사로 재직 중 별세하였다. 효행을 한결같이 실천하여 영천, 밀양, 창원 등 인근 선비들이 감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훗날 정려가 내려지고 『삼강행실도』에 관련 일화가 수록되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조광익은 퇴계(退溪) 이황(李滉)과는 선대부터 혼맥이 닿았던 관계로 일찍부터 이황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이황의 성리학에 관심을 가져 13세 때 이황을 만나 『심경(心經)』을 배우고자 하니, 이황은 학문은 단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소학(小學)』을 우선 가르치고자 하였다. 이에 조광익이 『소학』은 이미 숙독하였다고 하자, 이황이 시험해 보니 통달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남명 조식의 「대학팔조가」에 차운한 시를 보면, 조식에 대하여서도 상당한 존경심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1565년 9월 기대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근래에 학문을 이야기하는 자들을 보니, 응대하는 절차도 모르고 앉아 성리를 논의하면서 이름을 훔치고 사람을 속입니다. 이들이 경연에 있으니, 꾸짖어 멈추게 할 도리가 없습니까?[近見談學者 不知應對之節 坐論性理 盜名欺人 居在經筵 豈無呵止之道耶]”라고 한 구절을 통하여, 성리학 이론을 공부하면서도 실천에 역점을 둔 학문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저술로 2권의 『취원당집(聚遠堂文集)』이 있다. 1578년 5월 5일 세상을 떠났다.
[묘소]
조광익의 묘소는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 밀양 오방리 강동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조광익의 효행에 따른 정려(旌閭)가 내려졌고 『삼강행실도』에 관련 일화가 수록되었다. 밀양 오봉서원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