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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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佳山齋 |
영어공식명칭 | Gasan-ja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길 33-5[가산리 24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재식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에 있는 재사.
[개설]
가산재(佳山齋)는 설형(薛珩)[1718~1787], 설찬(薛瓚) 형제가 만년에 은거 수양하던 강학소다. 설형은 본관이 순창(淳昌)이고 호가 송재(松齋)이다. 원래 경상남도 함안에 살았으나 1762년(영조 38) 셋째 아우인 설찬과 함께 경상남도 밀양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에 둘째 설현(薛玹)과 막내 설환(薛瓛)도 차례로 이웃 동네에 모여 살면서 자주 왕래하며 형제 간의 우애를 돈독히 다졌다고 한다.
‘가산(佳山)’이라는 지명은 설형 등이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에 정착하면서 지칭한 것이고, 가산재라는 명칭 역시 설형 등이 지칭한 지명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1962년 노근용(盧根容)이 지은 「가산재 중건기(佳山齋 重建記)」에 의하면 “설형·설찬 형제가 1762년 이곳[가산]에 터를 잡고, 그 뒷산과 동네를 가산이라 칭하였다”라고 하였으며, “1799년 서사(書舍) 하나를 지어서 만년에 수양할 장소로 삼고는 편액을 ‘가산재(佳山齋)’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위치]
가산재는 현재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에 있다.
[변천]
가산재는 1799년 설형·설찬 형제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나, 1831년(순조 42)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후 1958년 후손들에 의하여 중건되어 집회소, 강학소 등으로 활용되었다.
[형태]
가산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다. 우측 2칸이 대청마루이고, 좌측 2칸이 방으로 되어 있다. 정면 상부에 ‘가산재(佳山齋)’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현황]
가산재는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순창설씨 문중에 의해 관리 및 보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지역 순창설씨 집성촌 형성 배경 및 집성촌 내 친목과 강학 등의 장소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가산재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