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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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川書院 |
영어공식명칭 | Guangcheon-seowo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사포중앙1안길 7[전사포리 62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재식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광천서원은 안명하(安命夏)[1682~1752]의 제향을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안명하는 본관이 광주(廣州)이고, 자가 국화(國華)이며, 호가 송와(松窩)로 조선 단종(端宗) 때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밀양 삽포리[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로 전거한 안억수(安億壽)의 9세손이다.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문인이다. 안명하는 평생 출사하지 않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하고 연구하여 성리학과 예학의 경지가 높았으며, 대학자 이상정(李象靖)[1711~1781]·정만양(鄭萬陽)[1664~1730]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 『송와집(松窩集)』, 『배운록(排雲錄)』 등이 있다.
안명하는 뛰어난 효행(孝行)으로 향촌 유림의 추숭을 받았다. 9세에는 아픈 할머니를 단지(斷指)로 소생시켰고, 13세에는 부친의 상사에 예법을 다하였다. 특히 뒤뜰 소나무 아래 송이버섯을 매일 직접 캐어 반찬으로 제공하는 등 홀어머니 봉양에 정성을 다하여, 손석관(孫碩寬)[1670~1743]이 안명하의 효행을 옛 왕상(王祥)이 겨울에 죽순을 얻은 고사에 비유한 글 「송균설(松菌說)」을 짓기도 하였다.
[위치]
광천서원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에 있다.
[변천]
광천서원은 1862년(철종 13) 안명하의 제향을 위하여 향촌 유림이 건립하였다가 1868년(고종 5) 조정의 명령으로 철폐되었다. 그 후 1979년 다시 향촌 유림의 공의로 복원되었다. 2022년 현재까지 고취정에서 안명하를 위하여 제향하고 있으며, 향사일은 3월 중정(中丁)이다.
[형태]
강당은 5칸이고 ‘광천서원(廣川書院)’이라는 편액이 있다. 사우는 ‘숭효사(崇孝祠)’로 3칸이다. 내삼문은 ‘상례문(尙禮門)’이다.
[현황]
광천서원은 현재 광주안씨(廣州安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