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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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 七山亭 |
영어공식명칭 | Chilsanjeong Pavilion |
이칭/별칭 | 모선재,구호당,칠산정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미3길 48-38[미촌리 79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전지원 |
건립 시기/일시 | 1863년 - 밀양 칠산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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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68년 9월 - 밀양 칠산정 모선재 중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6년 - 밀양 칠산정 중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10월 22일 - 밀양 칠산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8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95년 - 밀양 칠산정 모선정 화재로 소실 |
현 소재지 | 밀양 칠산정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미3길 48-38[미촌리 796] |
원소재지 | 밀양 칠산정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미3길 48-38[미촌리 796] |
성격 | 재실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5칸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8호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에 있는 개항기 재실.
[위치]
밀양 칠산정(密陽七山亭)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 뒤편의 산 중턱에 있다.
[변천]
밀양 칠산정은 칠산(七山) 손응용(孫應龍)[1741~1822]의 묘하재숙소(墓下齋宿所)로 1863년에 창건하였다가 소실되었다. 이후 증손자인 손건(孫建)이 1868년 9월에 중창하여 당호(堂號)를 ‘모선재(慕先齋)’, ‘구호당(龜湖堂)’이라 하였다. 그 후 1895년 화재로 또 소실되어, 5대손인 손기형(孫基亨)이 1906년 중창하여 칠산정(七山亭)으로 고쳐 불렀다.
[형태]
밀양 칠산정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정면으로 정당(正堂), 우측으로 청송루(聽松樓)가 ‘ㄱ’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칠산정의 건축 양식은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중앙의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이 있는 형태이다. 정당의 마루는 재회(齋會) 장소로, 좌우 온돌방은 제관들의 거처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익사(翼舍)는 온돌방과 누마루를 겸비한 건물로 전사청, 직방 등의 기능으로 건축되었다. 제수를 마련하는 주포(廚庖)의 기능은 방앗간채와 철거된 고직사(庫直舍)가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당의 상부 구조와 주량작(柱梁作)은 간결하지만 견실하며, 기둥과 들보의 규격과 형태, 치목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청송루(聽松樓)에 사분합(四分閤) 들문을 시설하여 필요시 마루와 온돌을 공간적으로 통합할 수 있게 한 것은 문중 제관들의 회합을 고려한 것이며, 마루 배면과 그 주위의 판문은 전통적인 판문의 변화 양상을 보여 준다. 장당의 상부 구조와 주량작은 간결하지만 견실하며, 기둥과 들보의 규격과 형태, 치목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
[현황]
밀양 칠산정 내부에는 ‘모선재(慕先齋)’, ‘구호당(龜湖堂)’, ‘칠산정(七山亭)’, ‘칠산별업(七山別業)’의 현판과 모선정기(慕先亭記)의 기문(記文)과 여러 시판(詩板)들이 걸려 있다. 밀양 칠산정은 2009년 10월 22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8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정당은 전퇴와 후퇴가 발달한 중당협실형 평면이나 온돌방 배면에 전 시기에 볼 수 없었던 수장 공간과 개방된 다용도 공간을 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정당 기둥 배열에서 중앙부와 좌우 양끝이 다른 것은 구조적인 규범을 탈피하면서 평면 구성의 변화를 추구한 데 따른 것으로 근대 초기 건축의 특징이다.
전면으로 누마루가 돌출한 익사는 정당에 비하여 정치(精緻)하고 고급스럽게 건축한 건물이다. 주두와 소로를 사용하여 수장한 누마루와 공간적인 통합이 가능하게 하였다. 지형의 자연적인 경사를 살려 건물 끝에 누마루를 형성하는 수법은 조선 말에서 근대 초기에 경상남도 밀양 지역 누정에 나타나는 특징의 하나이다. 첨자형 부재를 사용하여 종도리 장여를 받는 수법은 정당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주량작에 비하여 상부 기구 구성에서 매우 견실하고 장식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데, 조선 말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는 격동기에 경상남도 밀양 지역 향반(鄕班)들의 재실 건축의 경향과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