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070
한자 永慕齋
영어공식명칭 Yeongmojae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권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99년연표보기 - 영모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59년 - 영모재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4년 - 영모재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7년 - 영모재 중건
현 소재지 영모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영모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성격 재실
소유자 진양하씨 문중
관리자 진양하씨 문중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개설]

영모재(永慕齋)는 하재정(河再淨)[1575~?]이 중시조 돈재(遯齋) 하충(河冲)[1466~1525]과 낙포(樂圃) 하종억(河宗嶷)[1493~1559]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진양하씨(晉陽河氏)의 재실이다. 하재정은 임진왜란 뒤에 경상남도 밀양으로 귀향해서, 선산 옛 터에 재실을 지어 ‘영모재’라 편액을 걸고, 이를 자호(自號)로 하였다. ‘영모’는 ‘영원히 부모를 사모한다’라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향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하재정이 황급히 집으로 달려 왔으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피란을 할 수가 없었다. 하재정은 처남인 운정(雲汀)[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운정리]의 진주유씨(晉州柳氏) 유여주(柳汝周)에게 아들의 장래를 맡겼다. 유여주는 어린 생질을 데리고 경상북도 청송군으로 피란하여 임진왜란의 참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하재정이 10여 년간의 피란 끝에 귀향하여 보니 촌락은 황폐하였고, 부모님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하재정은 유여주의 주선으로 마을 뒤쪽에 터를 잡아 초당을 짓고 기거하면서 전화(戰禍) 중에 여인 부모를 영원히 사모한다는 뜻을 남겼다. 뒤에 ‘영모재(永慕齋)’라는 재액(齋額)이 붙게 되고 후손들의 합력에 의하여 재사(齋舍)가 확장, 이건되었다.

하숙정(河叔禎)이 쓴 「영모재기(永慕齋記)」가 있다.

[위치]

영모재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대항마을에 있다.

[변천]

영모재는 1599년 하재정이 하충과 하종억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1859년 현판의 호칭을 새로 걸고 옛 사당에 회칠을 새로 하여, 하충과 하재정의 신령을 모시는 곳으로 사용하였고, 1914년 중수하였다. 1967년 해가 오래되어 무너져서 다시 중건하였다.

[현황]

영모재는 진양하씨 문중에서 관리하면서 종중의 각종 행사나 선조의 제향을 봉향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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