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087
한자 仁山書堂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인산2길 67[인산리 62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준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3년연표보기 - 인산서당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8년 - 인산서당 중수
현 소재지 인산서당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인산2길 67[인산리 621]지도보기
원소재지 인산서당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인산2길 67[인산리 621]
성격 서당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사유
관리자 청도김씨 문중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인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당.

[개설]

인산서당(仁山書堂)은 청도김씨(淸道金氏)가 세거하며 공부하던 흥교재를 훼철하고 1923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훼철된 흥교재는 조선 후기에 양산군수를 지낸 김극유(金克裕)의 6세손인 김희문(金喜文)[1735~1805] 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인산서당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인산리에 있다.

[변천]

인산서당은 청도김씨 문중에서 세대로 공부하던 흥교재를 훼철한 뒤, 1923년에 흥교재가 있던 유지(遺址) 남쪽에 건물을 새로 지은 서당이다. 흥교재를 처음 지은 김희문의 5세손인 김두하(金斗廈)가 건립을 주관하고, 김두성(金斗星)이 실무를 맡아 처리하였다. 그러나 건물 건립 당시 풍토가 신학문에 집중되어서 서당으로서의 역할은 거의 하지 못하였다. 이를 아쉽게 여긴 김희문의 6대손인 김문회(金文會)가 1983년에 친분이 있던 벽사 이우성(李佑成)을 찾아가 서당의 역할 대신 조상을 높이고 친족 간의 친목을 돈독히 하기 위한 매개물로서의 기능을 말한 뒤, 그러한 기능에 맞는 기문을 요구하였다. 당시 이우성은 “인산서당의 재실명을 ‘보본(報本)’으로 하고, 헌명(軒名)을 ‘이이(怡怡)’로 한다”라는 기문을 써 주었다. 보본과 이이는 효도와 우애를 염두에 둔 말이다. 이후 인산서당은 서당으로서의 기능보다 문중 활동을 하는 매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형태]

인산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 1칸 규모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 1칸, 오른쪽에 온돌방 2칸을 두었다. 마루 위에는 해서체로 ‘인산서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현황]

인산서당은 2022년 현재 종실로 사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인산서당은 근대 이후 문중의 강학소로 쓰이던 장소가 현대 학문의 흐름 아래 어떻게 변모되는가를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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