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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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萬重 |
영어음역 | Gim Manjung |
이칭/별칭 | 중숙(重叔),서포(西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고수연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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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
성별 | 남 |
생년 | 1637년 |
몰년 | 1692년 |
본관 | 광산 |
대표관직 | 동부승지 |
[정의]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증조할아버지는 예학(禮學)의 대가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충렬공(忠烈公) 김익겸(金益謙)이다.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형은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이며,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가 조카딸이다. 어머니 해평윤씨 집안은 고조부와 증조부가 영의정을 지냈으며 할머니는 선조의 딸 정혜옹주(貞惠翁主)인 명문가로서 어머니는 정혜옹주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활동사항]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모습을 모르는 것이 평생의 한으로 여겨 어머니 해평윤씨에게 효도를 다했다. 어머니 윤씨는 책읽기를 즐겼기 때문에 갖가지 책을 구하여 항상 곁에서 읽어 드렸으며, 늙을 때까지 어머니 곁을 거의 떠나지 않고, 별거한 후에도 매일 아침 반드시 문안을 드렸다.
1665년(현종 6) 정시문과에 장원 급제한 후 정언·지평·수찬·교리를 거쳐 1671년(현종 12)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삼남 지방을 순시하였다. 이듬해 문학·헌납을 역임하고 동부승지가 되었으나 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작고하여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 문제로 야기된 예송(禮訟) 논쟁에서 서인(西人)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 후 다시 등용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또 여러 번의 탄핵을 받았는데, 박진규(朴鎭圭)·이윤수(李允修) 등의 탄핵으로 경상도 남해(南海)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저술 및 작품]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어머니 해평윤씨를 위로하기 위해 쓴 한글소설 「구운몽(九雲夢)」이 있다. 「구운몽」은 이전까지는 남해 유배지에서 쓰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발견된 『서포연보(西浦年譜)』에 따르면 평안도 선천(宣川)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기타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와 『서포만필(西浦漫筆)』, 『서포집(西浦集)』, 『고시선(古詩選)』 등의 저서가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서도면 대덕산 하고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98년(숙종 24) 관직이 복구되고 1706년 효행에 대해 정표(旌表)가 내려졌다.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충곡서원(忠谷書院)에 제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