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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수리조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622
한자 論山水利組合
영어의미역 Nonsan Irrigation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형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수리조합
설립연도/일시 1941년연표보기
설립자 동양척식주식회사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설립되었던 수리조합.

[설립목적]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군수품으로서 식량에 대한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 때문에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토지조사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국내 쌀값 앙등에 따른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고자 병행한 사업이 산미증식계획과 수리조합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변천]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27년 각지에 토지 개량 대행 업무를 시행하였다. 충청남도 도고는 750정보, 전라남도 송정은 1,200정보인 반면, 논산은 무려 3,000정보에 달하였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원활하고 안정적인 식량 공급 기지로서 이를 더욱 확대하여 7,000정보를 몽리면적으로 하는 논산수리조합 설치를 실행했다.

토지 개량의 주요 업무는 개발 가능한 토질 조사였다. 수전농업에 적절한가 여부는 수리조합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이었다. 이에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광동청기사 니시무라[西村]를 논산에 파견하여 충남토지개량과장 혼다[本田]와 함께 토질 조사를 수행하도록 지시하였다. 조사 결과는 매우 양호하였고,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되어 1941년 논산수리조합이 설립되었다.

공사비는 6백만 원, 사업 기간은 3년, 노동력은 연 50만 명에 달하는 대공사였다. 일제는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한편 농촌 경제를 부흥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1944년 당시 담당 기사는 김재철(金在喆)로, 그는 1947년 논산군 보건후생과장으로 승진하였다. 해방 후 논산수리조합장에 오른 인물은 김난수(金蘭洙)로, 그는 대건중학교후원회 회장, 논산소방대장, 논산읍 고문, 논산군참사회 부의장 등을 역임한 유지였다.

[주요사업과 업무]

논산수리조합논산군 관내 8개 면에 소재한 수전개발 가능지를 조사한 후, 수리조합 설치를 통하여 논산지역에서 경제적 수탈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하였다.

[의의와 평가]

논산수리조합 건설 사업에는 주민들의 안정된 수리답마저도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조합비는 농가 부채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렇듯 일제가 논산수리조합 설치를 통하여 경제적인 수탈을 강화함으로써 논산군 농민은 더욱 열악한 처지로 내몰리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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