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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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享齡墓所 |
영어의미역 | Grave of Yi Hyangry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 산93-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현정 |
성격 | 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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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643년 |
관련인물 | 이향령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 산93-3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종친 이향령의 묘소.
[개설]
익성군 이향령은 조선 중종의 아홉 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손자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때 뒤따라 호위하여 1597년(선조 30) 정의대부익성군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옥사가 일어나 진릉군을 추대하였다는 이이첨(李爾瞻)의 무고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1643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위치]
은진면사무소 전방에 난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250m 가다가 동쪽으로 이어지는 소로를 따라 800m 가면 시푸골 골짜기 남쪽 비탈면에 이향령 신도비가 보인다. 신도비 북쪽에 있는 언덕 남쪽 비탈면 일대에 전주이씨 익성군파 묘역이 있으며, 묘역 안에 이향령의 묘가 있다.
[변천]
이향령 사후 전라북도 익산군 왕궁면 용화리에 장사 지냈다가 1643년(인조 21) 벼슬이 회복되면서 현재의 자리인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로 이장하였다. 현재 전주이씨 종중에서 관리·보호하고 있다.
[형태]
이향령의 묘 앞에 있는 묘비는 호패형으로 비좌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신도비는 이수와 비신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특히 무덤 옆에 세워져 있는 무인석은 화강암 재질로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양손을 가운데로 모아 칼을 휘어잡고 있는 모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금석문]
묘비 앞면에는 ‘가덕대부익성군지묘군부인진주소씨부좌(嘉德大夫益城君之墓郡夫人晉州蘇氏祔左)’라고 새겨져 있다. 이향령 신도비에는 ‘익성군신도비명(益城君神道碑銘)’으로 시작하는 비명이 새겨져 있다. 비명은 조익(趙翼)이 짓고 오준(吳竣)이 썼다.
[현황]
전주이씨 익성군파 묘역에 이향령과 아들의 묘 등 5기의 묘가 있다. 익성군 신도비 및 무석은 1979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익성군파 묘역을 통해 당시 전주이씨 익성군파가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 주변에 세거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묘역에는 익성군의 묘뿐만 아니라 전주이씨 익성군파 재실과 이향령 신도비 등 당시 그들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어 익성군파 세거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한 이향령의 묘 옆에 있는 무인석은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모습이 자세하고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무인석이 세워졌던 당시 무인들의 의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