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6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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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國光神道碑 |
영어의미역 | Spirit Path Monument of Gim Gukgw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 왕대리 28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현정 |
[정의]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국광의 신도비.
[개설]
김국광 신도비는 구 신도비와 신 신도비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구비는 1489년(성종 20)에 세워졌고, 신비는 1726년(영조 2)에 세워졌다.
[건립경위]
왕의 총애를 받았던 김국광은 병이 들어 사직한 뒤 병치레를 하였다. 왕이 이를 슬퍼하며 부의를 내리고 사후에 쓸 장사 지낼 기구를 보내주었는데, 김국광의 아들 김극뉴가 아버지가 죽자 그를 당시 연산현 왕대리 언덕에서 장사를 지냈다. 이에 김국광의 아우와 여러 조카들이 뜻을 가지고 서거정에게 비문을 부탁하며 신도비를 세웠다.
[위치]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시 방향으로 약 13㎞ 가다 보면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약 11㎞ 가다 보면 왕대리가 나온다. 김국광 신도비는 왕대리 마을에서 야트막한 산지의 구릉에 위치해 있다.
[형태]
구 신도비는 대리석 재질로, 이수를 갖추고 있으며, 농대석은 화강암으로 높이 225㎝, 폭 91㎝, 두께 23㎝이다. 구비가 세월이 흘러 마모가 심하게 되자 새로 신도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신 신도비이다. 구비는 앞면에만 글이 새겨져 있다. 신 신도비는 비신이 대리석 재질로, 이에 팔작지붕 모양의 지붕돌[가첨석]을 하였고 농대석을 갖추었는데, 높이 231㎝, 폭 100㎝, 두께 26㎝이다. 신 신도비의 경우 구비와 달리 전후 양면에 글이 새겨져 있다. 구 신도비의 경우 마모가 심하며 신 신도비는 현재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두 신도비는 홍살을 둘러 보존하고 있다.
[금석문]
김국광의 신 신도비 명문은 다음과 같다. 전액은 ‘좌의정광산부원군김공신도비명(左議政光山府院君金公神道碑銘)’이고 ‘유명조선국정충출기적개순성명량경제홍화좌리공신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좌의정겸령경연춘추관사광산부원군증시김공신도비명병서(有明朝鮮國精忠出氣敵愾純誠明亮經濟弘化佐理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春秋館事光山府院君贈諡金公神道碑銘幷序)’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순성명량좌리공신숭정대부달성군겸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서거정찬(純誠明亮佐理功臣崇政大夫達城君兼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徐居正撰)’이라 쓰여 있고, ‘절충장군행룡양위대호군임사홍서병전액(折衝將軍行龍驤衛大護軍任士洪書幷篆額)’이라는 글이 남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김국광 신도비의 구비에는 제1행의 증시 아래 두 자가 비어 있다. 이는 당시 시호를 다루는 봉상시에서 문제를 거론할 때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김국광의 자손은 신도비를 세우며 이를 안타까워 하며, 이 일로 인해 조상의 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위안하는 내용의 추기를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