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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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山, 新里-大耳里-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집필자 | 최장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5년 10월 21일 - 삼척 신리 너와집과 민속유물 국가민속문화재 제3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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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9년 3월 10일 - 삼척대이리굴피집 국가민속문화재 제223호 지정 |
삼척 신리 너와집[구 김진호 가옥]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 391 | |
삼척 신리 너와집[구 강봉문 가옥]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 472 | |
삼척 대이리 굴피집[이종순 가옥] -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203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의 너와, 굴피 등으로 지붕을 이은 집.
[개설]
너와집은 지붕 재료를 기와나 이엉 대신 판재를 얇게 쪼개어 지붕에 차곡차곡 깔아 이은 집을 말한다. 너와집은 숲이 울창한 산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살림집이다. 너새집 또는 널기와집[판와가(板瓦家)]이라고도 한다. 너와의 재료는 산간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적송이나 전나무 등을 길이 600~700㎜, 너비 300~400㎜, 두께 40~50㎜ 정도로 쪼개 만든다. 쪼개진 나무를 서로 포개어 올려놓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무거운 돌을 얹어 놓거나 통나무를 처마와 평행이 되게 눌러 놓는다.
너와는 70장을 한 동이라고 한다. 보통 3.3㎡ 넓이의 지붕에 한 동 반 내지 두 동이 소요된다. 너와로 지붕을 이을 때는 방에는 고미반자, 부엌이나 외양간 등에는 노출 천장으로 각각 꾸미기 때문에 부엌에서 불이라도 지필 때 굴뚝으로 채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는 바로 천장의 너와 사이로 새어 나가게 된다.
너와의 수명은 보통 5년 안팎이지만 최근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음으로 인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이 없다 보니 목재 훈제가 되지 않아 더욱 짧아졌다. 너와는 기와지붕을 수리할 때와 달리 수시로 필요에 따라 썩은 것을 골라내고 새것으로 바꾸어 깐다. 나무이기 때문에 햇볕을 받으면 뒤틀리고 사이가 떠서 빗물이 샐 것 같지만 너와가 습기와 연기를 받으면 차분하게 가라앉기 때문에 비가 새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너와와 너와 사이에 틈새가 생기기 때문에 환기나 통풍이 잘되어 시원하고 연기도 잘 빠져나간다. 겨울철에는 지붕에 쌓인 눈이 틈새를 메우기 때문에 보온 효과도 발생하니 자체 단열 효과가 뛰어나다.
너와집은 외양간이 집 안에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것은 추위와 맹수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용마루 좌우 합각 부분에 까치구멍이라고 불리는 환기 구멍이 있다. 이곳으로는 환기도 되고 연기도 배출하게 되어 있어 평야지대 민가와는 다른 특이한 점이다. 특히 건조할 때 수축해서 틈새로 연기를 내보내고 비가 오면 팽창해서 비를 막아 주는 너와지붕은 산과 함께 살던 옛 산간 마을 화전민들이 고안해 낸 지혜의 산물이다.
굴피는 통상 참나무껍질을 말한다. 이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은 집을 굴피집이라 한다. 주로 삼척 지역 산간 지대 화전민들의 집에 이용되었다. 대부분의 나무는 껍질을 벗겨 내면 수분을 흡수할 수 없어 말라 죽게 되지만 참나무는 껍질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 외부의 것을 벗겨내도 3년이면 다시 원상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굴피집은 원래 너와를 올리던 지붕을 1930년경 무렵부터 너와 채취가 어려워지자 주변에 참나무가 많은 산간 지대에서 채취와 지붕을 잇는 작업이 쉽다는 점에 착안하여 너와 대신 굴피로 지붕을 이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너와집과 다를 것이 거의 없다.
굴피는 화창하고 맑은 날에는 틈이 벌어져 있다가 비가 내려 수분을 머금게 되면 팽창하여 틈새가 사라짐으로써 비가 새지 않게 되고, 겨울철에 눈이 덮이면 눈 무게에 눌려 틈이 없어지면서 보온 단열이 되는 반면에 더운 여름날에는 통풍이 잘되는 특징을 보인다. 외벽 또한 틈이 많은 널판 벽[판장 벽 또는 빈지 벽]이지만 겨울철에는 외벽 주위에 땔감인 장작을 쌓아서 장작이 보온 단열재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굴피집은 주 출입구를 서향으로 두고 있고, 정면은 남향으로 되어 있다. 정면 3칸, 좌측면 3칸, 우측면 2칸의 집이다. 안마루를 중심으로 방들이 돌아가며 있다 하여 두렁집이라고도 한다.
[삼척 신리 너와집(구 김진호 가옥)]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 있는 너와집이다. 이 집은 주 출입구를 남서 방향으로 두고 있다.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다. 집의 정면은 남동 방향이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 형태로 거의 정방형이다. 내부 공간이 용마루 아래에 세 줄로 나란히 이어져 있는 세겹집으로, 사방집이다. 건물의 정면은 부엌이 있는 쪽이지만 주 출입은 외양간이 있는 측면으로 한다. 이러한 출입 형태는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이 지역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민가를 측입 민가 또는 측입형 민가라고 한다.
사랑방 앞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쪽마루는 장마루로, 세 방향으로 귀틀을 돌리고 그 귀틀에 의지하여 마루 널인 청판을 깔았다. 외부 손님은 이 쪽마루를 통하여 사랑방으로 출입하며, 주인은 주로 외양간 측면의 쌍여닫이 판장문을 통하여 출입한다. 사랑방으로 통하는 내부에는 그 앞에 우물마루 형태의 안마루가 설치되어 있고, 그 옆으로 쇠죽을 끓이는 큰 무쇠 솥과 아궁이가 있다. 이 아궁이에서 사랑방을 난방하며, 쇠죽을 끓이기도 한다. 아궁이 옆으로는 두 짝의 여닫이 판장문이 있다. 이 판장문은 환기와 채광을 위하여 설치하였다. 사랑방의 앞쪽으로 외양간이 설치되어 있다. 외양간에는 가축이 외부와 직접 출입할 수 있도록 한 짝의 판장문으로 된 미닫이문이 설치되어 있다. 외양간의 상부에는 다락[또는 쇠다락]을 만들어서 겨울철에 가축에게 먹일 여물 등을 보관한다.
건물의 중앙 부분에는 안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안마루는 우물마루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부재가 매우 두꺼워 귀틀은 180×180㎜ 정도의 굵기를 보이고 청판 두께는 약 100㎜이다. 안마루로 오르기 위하여 커다란 댓돌이 설치되어 있다. 댓돌은 통나무를 잘라 다듬어서 만들었다. 안마루에서 안방과 도장방으로 출입한다. 안방과 도장방의 출입문은 모두 외여닫이로서 세살문 형태이지만 평야지대의 문과는 달리 문살이 매우 투박하다.
안방의 뒤쪽으로는 도장방이 있다. 도장방에서는 곡식을 저장하기도 하고 여자 손님이 방문했을 때 숙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도장방이 주로 곡식 등을 수장하는 기능이라고 할 때 이 공간은 내부에 있는 창고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안방에서도 집의 뒤쪽으로 직접 출입할 수 있는 출입구가 마련되어 있다.
부엌은 모두 3칸을 쓰고 있다. 그러나 취사에 필요한 공간은 1칸에 불과하다. 가운데 1칸은 봉당, 나머지 1칸은 쇠죽을 끓이는 가마정지로 각각 사용한다. 봉당 공간은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가내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사용된다. 이 봉당 공간에 화로의 일종인 하티가 있다. 하티는 불씨를 보관하는 장소로, 크기가 900×720㎜ 정도이다. 취사가 끝난 후 불씨를 하티에 묻어 보관하였다가 아침에 꺼내 쓴다. 부엌과 봉당은 벽으로 2/3 정도를 막았으며, 이 벽체 사이에 두등불을 설치하였다. 두등불은 원시 형태의 조명 장치로, 이곳에 등잔불이나 관솔불을 놓아 부엌과 봉당 공간을 밝혔다. 부엌은 방보다 약 1/4 내달아 만들었다.
부엌에는 모두 4개의 솥을 걸 수 있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안방과 도장방을 난방한다. 이 부뚜막의 반대쪽에는 선반을 달아 놓고 그곳에 간단한 부엌살림을 보관한다. 화장실은 외양간의 측면에 2칸으로 설치되어 있다. 이것은 남자용과 여자용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다.
집 구조는 2고주 5량가로 매우 큰 규모에 속한다. 부재는 평야지대 집들과 달리 치수가 큰 편이고, 마름질 기술도 매우 발달하였다. 기둥과 보, 기둥과 도리는 모두 사괘맞춤으로 정교하게 짜 맞추었다. 도리 아래쪽에는 장혀[또는 장여]를 대어 보강하였다. 기둥은 170×170㎜ 정도의 방형 기둥을 사용하였고, 도리는 약 150~190×150~230㎜ 정도의 굵기를 보이고 있다. 초석은 모두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 주초이고, 기단 또한 자연석 기단이다. 서까래는 지름 120㎜ 정도이고, 처마 내밀기는 약 1450㎜이다. 이처럼 처마를 길게 뽑은 것은 이곳이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아서 집 주위의 통로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지붕은 너와로 이었다. 너와를 두 겹으로 잇고, 용마루 부분은 굴피로 이었다. 너와와 굴피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큼직한 돌과 통나무 누름 목을 지붕 위에 올려놓았다. 천장 구조는 방마다 모두 고미반자를 설치하고, 그 양쪽으로 서까래를 보낸 후 서까래에 직각으로 산자를 놓고 흙으로 발라 마감하였다. 보 위로 대공을 올린 후 그 위에 종도리를 놓고 양쪽으로 서까래를 올린 후 너스레를 걸어 놓아 너와가 빠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삼척 신리 너와집(구 강봉문 가옥)]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 있는 너와집으로, 주 출입구를 서북 방향을 두고 있다.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다. 집의 정면은 남서 방향을 하고 있다. 평면 형태는 정면 3칸, 좌측면 3칸, 우측면 2칸 형태로 거의 정방형을 이룬다. 외양간 부분은 돌출되어 있는 두렁집이다.
건물의 정면은 부엌이 있는 쪽이지만 주 출입은 외양간이 있는 측면으로 한다. 이러한 출입 형태는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이 지역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민가를 측입 민가 또는 측입형 민가라고 한다.
사랑방에는 외부에서 직접 출입할 수 있도록 외여닫이문이 설치되어 있다. 문살 형태는 세살문으로, 평야지대의 문살보다 투박하다. 주 출입구로 사용하는 외양간 옆의 문은 판장문이며, 쌍여닫이이다. 이 출입구로 들어오면 사랑방으로 통하는 또 하나의 외여닫이문이 있다. 가족끼리는 이 외여닫이문을 통하여 사랑방을 출입한다. 이 출입문 앞쪽으로는 쇠죽을 끓이고 사랑방을 난방하는 부뚜막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이 사랑방 위쪽으로는 도장방이 있다. 도장방은 중앙의 마루에서 출입할 수 있고, 문 형태는 세살문이다. 또 도장방에서는 외부로 직접 출입할 수 있는 외여닫이문이 설치되어 있다. 사랑방 반대쪽으로는 외양간이 있다. 외양간으로의 출입은 외부에서 외여닫이 판장문을 통하여 가축이 직접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외양간 상부에는 다락(쇠다락)을 만들어서 겨울철에 가축에게 먹일 여물 등을 저장한다. 외양간은 건물의 평면에서 1칸 덧달아낸 형태이며, 서까래를 종도리에서 덧달아 내어서 연결하였다.
중앙의 마루는 우물마루로, 장귀틀이 대단히 길고 전면의 귀틀이 매우 커서 260×400㎜의 굵기를 보인다. 우물마루에서는 사랑방 위쪽의 도장방과 안방으로의 출입이 가능하다. 안방은 우물마루에서 출입할 수 있으며, 안방의 위쪽에는 도장방이 있다. 도장방은 안방에서만 출입이 가능하다.
사랑방과 안방의 위쪽에 있는 도장방은 여자 손님들의 잠자리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곡식 저장고로 사용된다. 사랑방과 안방의 크기는 1칸을 약간 넘어선 크기로 이는 위쪽에 도장방을 설치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부엌은 전체 3칸을 사용하지만 2칸의 공간은 보당으로 이용되고, 취사에 필요한 공간은 1칸만이 사용되었다. 봉당 공간은 비가 오거나 추운 겨울철에 가내 작업 공간으로 사용된다.
부엌에는 3개의 솥을 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부뚜막에서 안방과 도장방을 난방한다. 화장실은 외양간의 측면에 2칸 규모로 설치되었다. 벽체는 방의 경우 심벽 구조로 되어 있다. 부엌과 봉당, 외양간, 화장실은 모두 널판(판장 또는 빈지) 벽이다. 안채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헛간이 별채로 있다. 헛간에는 농기구 등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과 디딜방아가 놓여 있는 공간이 있다.
집 구조는 5량 가구 구조로 큰 규모에 속한다. 부재는 평야지대 집들과 달리 치수가 큰 편이고, 마름질 기술도 매우 발달하였다. 기둥과 보, 기둥과 도리는 모두 사괘맞춤으로 정교하게 짜 맞추었다. 도리의 아래에는 장혀(장여)를 대어 보강하였다. 기둥 굵기는 150㎜ 정도의 방형기둥을 사용하였으며, 도리는 150~190×150~220㎜ 굵기를 보인다. 초석은 모두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 주초이다. 기단 또한 자연석 기단이다. 서까래는 지름 120㎜ 정도이다. 처마 내밀기는 약 1500㎜를 보인다. 이처럼 처마를 길게 뽑은 것은 이곳이 겨울철 적설량이 많아 집 주의의 통로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지붕은 너와로 이었다. 너와를 두 겹으로 얹었으며, 용마루 부분은 굴피로 이었다. 너와와 굴피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큼직한 돌과 통나무 누름 목을 지붕 위에 올려놓았다. 천장 구조는 방마다 모두 고미반자를 설치했으며, 양쪽으로 서까래를 보낸 후 서까래에 직각으로 산자를 놓고 흙으로 발라 마감하였다. 보 위로 대공을 올린 후 그 위에 종도리를 놓았으며, 양쪽으로 서까래를 올린 후 너스레를 걸어 놓아 너와가 빠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삼척 대이리 굴피집(이종순 가옥)]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있는 굴피집이다. 주 출입구를 서향으로 두고 있으며, 정면은 남향을 하고 있다. 정면 3칸, 좌측면 3칸, 우측면 2칸의 집이다. 안마루를 중심으로 방들이 돌아가며 있다 하여 두렁집이라고도 한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긴 변을 정면으로 하고 있지만 주 출입은 측면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출입 형태는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이 지역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민가를 측입 민가 또는 측입형 민가라고 한다. 평면은 전면을 셋으로 나누고 측면은 둘로 나누어서 안마루를 가운데 두고 그 뒤로 도장을 두고 있다. 좌측면 앞에서부터 외양간, 가마정지, 사랑방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우측면은 앞에서부터 부엌, 안방 순으로 배열되었다. 가운데에는 봉당, 안마루, 도장방 순으로 되어 있다. 외양간을 좌측면 앞으로 내어달아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부엌은 크게 보면 앞쪽 3칸을 쓰고 있지만 취사에 필요한 공간은 1칸에만 설치되고 나머지 2칸은 실내 작업을 할 수 있는 봉당 1칸과 쇠죽을 끓이는 가마정지 1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부엌의 앞쪽 널판 벽 위에는 살강을 설치하였다. 살강 반대쪽으로는 부뚜막이 있다. 아궁이는 2개이며, 그 왼쪽에 하티가 있다. 하티와 마루 사이에는 널판을 끼워 안마루와 부뚜막을 구분하였다. 이 널판 벽에는 호롱불을 설치하는 곳인 두등불이 있다. 부엌 바닥은 흙다짐으로 되었으며, 부엌 출입문은 두 짝 여닫이문이다.
사랑방은 외부에서 직접 출입이 가능하며, 안마루 쪽에도 문이 있어 사랑방 출입이 가능하다. 사랑방과 안방의 벽 귀퉁이에는 관솔을 지펴서 어둠을 밝히는 시설인 코쿨이 있다. 양쪽 방 모두 북쪽 벽 상부에는 2개의 원형 통나무를 벽체에 걸어 시렁을 설치하였다. 방바닥은 흙바닥에 짚자리가 깔려 있었다가 최근에 비닐 장판으로 교체하였다. 도장은 안마루와 안방에서 직접 출입이 가능하다. 이곳 도장에 추수한 곡식 등을 저장한다. 안방의 경우 외부로 출입하는 문이 2개인 것이 특이하다. 가운데 1개의 문설주를 두고 좌우대칭으로 여닫이문을 설치하였다. 안마루는 여름에 이곳에서 식사도 하고 사소한 집안일도 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등의 공간이 된다. 겨울에는 곡식을 저장하는 수장고 역할도 한다. 안마루의 귀틀은 205×145㎜ 정도로 상당히 굵은 편이다. 청판 두께는 100㎜ 정도이다. 외양간은 가마정지 앞으로 한 칸 내어달아 만들었기 때문에 지붕 모양은 부섭지붕(한쪽 면만 있는 지붕)과 비슷하다. 처마를 계속 이어 내렸기 때문에 지붕마루는 따로 없다. 외양간은 가축이 바로 출입할 수 있도록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았다. 외양간 상부는 굵은 통나무를 가로질러 다락(쇠다락)을 만들었다.
구조는 평주 5량으로 되어 있다. 서까래 굵기는 90~110㎜이다. 기둥과 도리는 모두 방형 부재를 사용하고 있다. 추녀를 네 귀에 걸고, 서까래는 선자형 서까래와 비슷하게 걸쳤다. 모든 도리에는 방형의 장혀(장여)를 받쳤다. 기둥, 도리, 보의 맞춤은 사괘맞춤으로 되어 있다. 처마 내밀기는 약 1450㎜이다. 이처럼 처마를 길게 뽑은 것은 이곳이 겨울철에 적설량이 많아 집 주위의 통로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초석은 모두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 주초이고, 기단 또한 자연석 기단이다.
사랑방, 안방, 도장방의 벽은 모두 심벽 구조로 되어 있다. 부엌과 봉당, 가마정지, 봉당, 화장실의 벽은 모두 널판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굴피로 이었다. 지붕면은 비가 새지 않도록 상하로 겹쳐서 얹었으며, 용마루 부분도 굴피로 이었다. 굴피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큼직한 돌과 통나무 누름 목을 지붕 위에 올려놓았다. 천장 구조는 방마다 모두 고미반자를 설치하고, 양쪽으로 서까래를 보낸 후 서까래에 직각으로 산자를 놓고 흙으로 발라 마감하였다. 보 위에는 대공을 올린 뒤 그 위에 종도리를 놓고, 양쪽으로 서까래를 올린 뒤 너스레를 걸어 굴피가 빠지는 것을 방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