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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동 국민방위군묘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38
한자 道順洞國民防衛軍墓-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136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동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6월 13일연표보기 - 해군 제주방어사령부 국민방위군 유해 발굴
소재지 국민방위군 가매장지 - 서귀포시 도순동 1368 강정천 하천변지도보기
성격 매장지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에 있는 6·25 전쟁기 국민방위군 훈련병들의 임시 매장지.

[개설]

2003년 6월 13일 해군 제주방위사령부에서는 제주도 서귀포시 도순동 강정천 하천 속칭 ‘난쟁이도’에서 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되어 훈련 중 질병 등으로 숨진 44구의 유해를 발굴하였다.

이들 유해들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12월 신속한 전시병력 동원령에 따라 전국에서 징집된 국민방위군들이었다. 국민방위군은 만 17세-40세 미만의 제2 국민병역 해당자로 구성됐는데 이들 중 일부가 1951년 1·4후퇴 무렵 최후방 제주로 퇴각하였다.

이들은 당시 서귀포시 강정국민학교에 마련된 '특수 공동 수용소'에서 훈련 등을 받으며 공동생활을 했는데, 당시 이 곳의 경비를 맡았던 전직 경찰관 장모씨[81세, 제주시]는 "인원이 최대 2천~3천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국민방위군 사령관 등 고급 장교들이 군수 물자를 조직적으로 착복하는 '국민방위군 사건'[국회 진상조사결과 1950년 12월~1951년 3월까지 현금 23억원, 쌀 5만2천섬 착복]이 발생하는 등 군수 물자가 제대로 보급되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곳에서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거나 전염병인 '디프테리아'가 돌아 병사하는 장정들이 줄을 이었고, 이들은 결국 강정천 하천부지에 가매장 됐다

[변천]

윤경로[서귀포시, 2003년] 등 마을 노인들은 "1951년 겨울 강정국민학교에 수용됐던 무명바지를 입은 장정들이 숨진 동료들의 사체를 강정천 하천변에 가매장하고 나무 푯말을 세웠다"고 증언한다. 이 때 희생된 장병들은 반세기동안 위령비조차 없이 가매장지에 방치됐다가 1993년 희생자 김국진씨의 장남 김흥순의 진정으로 가매장 사실이 밝혀졌고, 2003년 6월 13일 해군 제주방위사령부에 의해 유배발굴을 통한 합동 영결식을 거행하였다.

[위치]

제주 서귀포시 도순동 1368번지 강정수원지 서북쪽 속칭 ‘난쟁이도’ 하천 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3년 유족 김흥순[서울시 강서구]이 청와대와 서귀포시 등에 진정함에 따라 해군 제주방어사령부에서는 2003년 5월19일 발굴 작업을 실시했다. 발굴결과 국민방위군 유해로 추정되는 44구의 유해가 발굴되었으며, 수첩과 단추·신발·요대·배지·도장 등 유품 312점도 수거됐다. 제주방어사령부는 2003년 6월 13일 합동영결식을 갖고 국민방위군으로 판정된 성인 유해인 경우 국립묘지에 안장하기로 했다.

[의의와 평가]

2012년 현재 도순동 국민방위군묘 터[가매장지]는 유해발굴 이후 방치되어 잡목만 무성하여 아무런 흔적이 없다. 지역주민들과 유족들은 유해들이 가매장 되었던 현지에 무명용사의 탑이나 추모비라도 세워 유명을 달리한 장병들의 넋을 기려주길 바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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