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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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팔수(金八洙)[1898~1971]는 1898년 1월 28일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동[현 도남리] 454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창천 시장(倉泉市場) 장날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만세 시위를 벌였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는 3월 27일 선남면 소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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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신안(新安), 전인(全仁), 후포(後浦)와 보남(寶南)과 이천(伊川)의 일부를 합하여 도남동(道南洞)이라고 하였는데, 정확한 유래는 찾기 어렵다. 도남1리의 자연 마을로 자리섬[석도(席島)·성곡(城谷)·전인(全仁)]과 뒷개[후포(後浦)], 청룡(靑龍), 갈밭, 신안(新安)이 있고, 도남2리의 자연 마을로 언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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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있는 법정리. ‘동락(東洛)’은 자연 마을인 동락에서 따온 이름으로 추정된다. 동락1리의 자연 마을로 동락골[동락·원동락(元東洛)], 개정리[가정동(柯亭里)]가 있고, 동락2리의 자연 마을로 패약골[두만동(豆滿洞)]과 가죽정(柯竹亭)[가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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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성주 지역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 운동.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3.1 운동은 3월 27일 선남면 소학동의 이현기(李玄琪)가 주도한 만세 시위 운동과 가천면 동원동의 이상해(李相海)가 주도한 만세 시위 운동을 필두로 4월 2일 성주면과 벽진면의 독립 만세 운동, 4월 3일 지사면 수륜동[현 수륜면 수륜리] 만지 시장의 독립 만세 운동, 4월 6일 가천면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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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성덕이(成德伊)[1899~1969]는 1899년 3월 10일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동[현 도남리] 46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창천 시장(倉泉市場) 장날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만세 시위를 벌였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는 3월 27일 선남면 소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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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준을 시조로 하고, 배인경을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신라 6부촌 중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의 촌장 지타(祗陀)를 연원으로 두고 있다. 박혁거세를 옹립한 신라 개국 공신으로 후대에 문양(文讓)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이후 고려의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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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에 있는 법정리. 오래전부터 마을 안에 맑은 샘이 흐르고 들판이 기름지다 하여 천평(泉坪)[샘바대]이라 하였다. 1715년(숙종 41) 성주목사 윤헌주(尹憲柱)가 마을 안에 양곡을 보관하기 위하여 창고를 짓고 천야창(泉野倉)이라 하면서 마을 이름을 ‘천창(泉倉)’으로 고쳐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 일본 사람들이 천창의 발음이 전쟁을 뜻하는 일본어 ‘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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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일제 침략과 일제 강점에 항거한 성주 유림의 항일 독립운동. 1894년 갑오변란(甲午變亂)과 1895년 명성 황후(明成皇后) 시해 및 단발령으로 이어지는 일제의 침략 앞에서 충청북도 제천의 의암(義菴) 유인석(柳麟錫)[1842~1915]이나 안동의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1777~1861]을 잇는 정재 학맥의 유림이 ‘거의소청(擧義掃淸)’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의병 항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