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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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輿地圖書星州牧 |
영어공식명칭 | Yeojidoseo Seongjumok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두 |
[정의]
1760년 전국 읍지인 『여지도서』 편찬 당시 성주목에서 편찬한 읍지.
[편찬/간행 경위]
『여지도서(輿地圖書)』 편찬 사업 당시 홍문관은 각 고을에 35개 항목을 수록하도록 규정을 내려 보냈으나, 경상도에서는 5개 항목을 추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모든 항목을 반영하였다. 당시 경상도 각 고을에서는 중앙에 올려 보낼 3권[어람·홍문관·성균관], 감영에 비치할 2권을 만들어 감영에 바쳤다. 감영에서는 각 군현에서 읍지를 일률적으로 재단하고 장정하여 책으로 묶었다.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하여 보급하였으며, 2009년 전주대학교에서 번역본을 출판하였다.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에 도일회가 기탁한 『독용진 성주목지지(禿用鎭星州牧地誌)』도 『여지도서』 편찬 당시의 읍지로 여겨진다.
[형태/서지]
전체 2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 장은 지도 2면이다. 본문은 인찰 공책지에 1면 20행, 1행의 자수는 20자로 정서하였다. 권수제는 ‘독용진 성주목(禿用鎭星州牧)’으로 되어 있다. 현전하는 『여지도서』는 뮈텔 주교 수집품으로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다.
[구성/내용]
『여지도서』 「성주목」 수록 항목은 지도, 강역(彊域), 방리(坊里)[호구 포함], 도로(道路),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山川), 성씨(姓氏), 풍속(風俗), 궁실(宮室), 학교(學校),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관애(關阨)[관액], 봉수(烽燧), 누정(樓亭), 사찰(寺刹), 고적(古蹟), 진보(鎭堡), 명환(名宦), 인물(人物), 제영(題詠),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순이다. 권두의 방리, 도로와 한전부터 군병까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없던 신설 항목으로 두어 자 정도 띄었다. 중앙 정부에서 지방 행정을 정비하고 조세 부과의 기준을 확보할 목적이었다. 학교·명환·제영·궁실은 원래 홍문관에서 제외시킨 항목이었다. 방리 항목에서는 40개 면의 관아로부터의 거리와 호구(戶口)를 기재하였는데, 1759년[기묘년] 통계에 의하면, 성주목은 1만 1970호, 5만 6828명이었다. 명환 항목에는 이총언부터 조호익까지 성주에 부임하였던 지방관 15명을 수록하였으며, 인물 항목에는 이장경부터 열녀 허씨까지 인물·우거·충신·효자·열녀를 수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여지도서』 「성주목」 은 1760년 성주목에서 편찬한 관찬 읍지이며, 성주목의 역사와 지리, 인문 환경은 물론, 당시 성주목에서 부담하였던 조세와 군역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